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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5미리 맛보는 하나님 나라 잔치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4:7~15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7월 15일 2부예배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을 이름과 함께 그들의 특징을 단번에 드러내는 별명으로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26세 때에 ‘기독교 강요’를 쓴 종교개혁가 존 칼빈의 별명은 ‘걸어 다니는 병원’이었습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물총새에 불이 붙듯이’의 저자, ‘메시지’ 성경 번역자 유진 피터슨에 대해 사람들은 ‘목회자들의 목회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왕 헤롯의 별명은 ‘여우’(눅13:31~32)입니다. 여러분의 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도 별명이 있을까요? 누가복음7:34절,“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라는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별명은 두 가지입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세리와 죄인의 친구’입니다. 이 별명들은 본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하하기 위해 붙인 것들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두 별명은 예수님과 예수님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붙여진 별명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루어져 가는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실 것이 ‘풍성한 잔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잔치다!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를 잔치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들과 비교해 볼 때에 잔치와 식사 장면이 더 많이 등장합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누가는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예수님과 동행하는 ‘여행’으로 그려왔습니다. 여행이라는 관점과 함께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오시는 하나님 나라를 ‘잔치’로 묘사합니다. 

   누가복음을 끝까지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를 그리는‘여행’과 ‘잔치’의 그림은 최종적으로 누가복음 마지막 24장의 ‘엠마오로 가는 길 이야기’에서 하나가 됩니다. 마치 두 개의 큰 지류가 만나 하나의 강을 이루는 것과 같은 구도입니다. 이렇듯‘잔치’는‘여행’과 함께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 무엇인가? 를 제대로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누가복음만이 아닙니다.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의 첫 번째 이적은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요2:1~11)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의 마지막 기록인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는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잔치’(계19:1~10)로 완성될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본문 마지막 15절,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라는 말씀같이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며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초대된 여러분과 저는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구원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고 감사하십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나치게 어둡고 칙칙한 단색조의 삶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그리스도인 되는 것을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다 포기하고 칙칙한 회색 옷을 입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 나라는 잔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의와 평강과 기쁨이 있습니다(요8:32,롬14:17). 3층 세미나 실에 가면  일반적인 성화와는 다르게 ‘파안대소’하시는 예수님의 성화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된 주빈들로서, 시편95:1~2,7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는 말씀 같이 즐거이 노래하고 외치며 하나님 나라 자녀 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는 성도들 되시기 축복합니다.  



은혜와 섬김의 잔치다!

   하나님 나라가‘잔치’이고, 거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는 이유는 이 잔치는‘은혜와 자비’가 가득한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배려와 섬김’이 가득한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첫 번째 하신 ‘잔치의 비유’가 이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7~11절을 읽어봅시다. 이 말씀은 언뜻 이해하기로는 ‘인생의 처세훈’, ‘사회적 예의범절’, ‘생활의 지혜’처럼 들립니다. 물론 그런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관계의 모든 영역에서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는 보다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비유는 본문 마지막 15절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대한 것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만일 하나님 나라가 본문이 보여주는 것 같이 ‘자리 신경전’, ‘자리싸움’하는 곳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잔치’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정글’일 뿐입니다. 권위주의적인 상사가 선심성으로 제공하는 회식이 진정한 회식일 수 없는 것과 유사합니다. 분명히 이 잔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본문 7절의 ‘높은 자리’ 8절의 ‘더 높은 자리’라는 표현이 암시하듯이 ‘신분’의 문제입니다. 이렇듯 ‘자리에 대한 긴장, 신경전, 다툼’이 있는 곳을 결코 ‘잔치’라 여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리고 계시는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본문 10절을 읽어봅시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그리고 계시는 하나님 나라 잔치는 청함을 받은 사람이 누구든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 ‘끝자리’에 앉는 잔치입니다. ‘높은 사람, 더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끝자리’에 앉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즐거운 잔치입니다. 실은 10절 하반절에 표현된 ‘끝자리의 반대급부?’(주인이 와서 올라앉으라고 권함으로 모든 사람 앞에 영예롭게 되는 것)조차 하나님 나라 잔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높은 사람으로서 낮은 자리에 앉는 즐거움을 알고 누리는 곳입니다. 

   가장 높은 분으로서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신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빌립보서2:5~8절을 읽어봅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 나라가 진정한 ‘잔치’인 이유는 이렇듯 가장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자기를 내어 주심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종말의 하나님 나라 잔치의 원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의 삶의 방식이 되고 잔치의 방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잔치다!

   하나님 나라가 ‘잔치’이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잔치는 모두가 행복한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는 진정한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2-14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두 번째 ‘잔치 비유’가 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철저하게 ‘주고받기 원칙’(give and take)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보니 누군가를 잔치나 식사 모임에 초대할 때에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12절)과 같이 이미 맺어 온 관계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집니다. 그 경계를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정작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배려가 필요한 사람은 항상 바깥으로 밀려나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이렇게 도전하십니다. 13절을 읽어봅시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 나라가 진정한 ‘잔치’인 이유는 누구든 그 잔치에 초대되고 들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기꺼이 맞아주시고 환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저는 사람들’, ‘맹인들’이 먼저 초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모든 사람이 참여할 잔치라는 예수님의 생각은 비단 오늘 본문 말씀에만 들어난 것이 아닙니다. 지난주일 말씀 중 누가복음13:29절,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 할 사람들, 그 이전 누가복음13:19절 말씀 중 ‘자란 겨자씨의 나무 가지에 깃든 공종의 새들’ 에 비유되는 사람 모두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대상들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서 소외시키거나 배제시키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이유와 근거로 만들어 놓은 경계와 담으로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배제시켜 하나님 나라가 ‘모든 사람의 잔치’가 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을 민감하게 만들고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하는 상황과 대상들이 있습니다. ‘동성애자, 난민, 군복무 대체주의자, 극단적 페미니스트’ 등등. 이들의 주의 주장이 성경의 시각에 어긋나고 그래서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을 들었던 사람들’(요8:3~11)같이 행하는 것은 우리 주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죄인’이기에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구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구하며 긍휼이 여기는 것뿐입니다.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거처 건전한 사회적인 합의가 있기까지 의견을 개진하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할 일입니다만 정죄와 혐오와 배제의 돌을 드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잔치’인 이유는 그 안에서 회복되지 않을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하나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아직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낮은 자리’로 내려가고 용기를 내어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십시다. 


 ‘예수님의 별명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비아냥하려고 지어준 별명이지만 예수님과 예수님이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인 여러분과 저 또한 예수님 같은 별명으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를 즐겨하는!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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