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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5예수, 귀신의 왕? 하나님의 아들?

  • 성경본문 : 누가복음11:14~26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4월 15일 2부예배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어떤 분입니까? C.S 루이스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정신병자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미치광이거나 그 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막을 수도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 편승하지는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예수는 보기에 따라서는 정신병자이거나 혹은 귀신의 왕이거나 아니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 중간 지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어떤 분입니까? 



예수, 귀신의 왕? 하나님의 아들?

   오늘 본문 이후에는 일명 ‘몇 가지 논쟁들’이 계속됩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 간에 논쟁입니다.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시비를 거는 이유는 예수님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망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신지가 점점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 안에 있는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내 쫓아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말 못했던 사람이 드디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말을 못하는 것은 고통 중에 고통입니다. 본문에 한 사람이 말을 못했던 것은 귀신의 억압 때문이었습니다. 이 귀신의 억압으로부터 놓임 받는 것은 본인 뿐 아니고 가족, 주변 모든 사람들이 원해왔던 일입니다. 이 일을 예수님이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내 쫓아주신 것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본문 14절의 표현과 같이 사람들의 ‘놀람’이고 다른 하나는 15절의 표현과 같이 ‘비방’입니다. 본문의 두 가지 반응은 본문 당시의 사람들만이 아니고 예수님에 대한 이후의 모든 사람들의 전형적인 반응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이 둘 중 하나입니다.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시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구원자, ‘메시야’ 즉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 놀라 그 분 앞에 엎드려 그 분의 은혜를 구하던지, 아니면 예수가 주장하는 일이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고백과 믿음이 허구라고 여기고 ‘정신 나간 사람들’의 주장으로 비방하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를 만나 자신과 세상을 새로이 발견하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기사로 넘쳐납니다. 존재의 중심으로 예수와 대면한 사람에게는 어떤 ‘놀람’이 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라고 놀랐습니다. 이렇듯 예수를 중심으로 만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죄인 된 자신의 실상을 발견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18:38~39)라고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이와는 상반된 반응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귀신 들렸다’, ‘미쳤다’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비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와 예수를 따라 사는 사람들을 핍박하기도 합니다. 본문 15절을 읽어봅시다.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을 말합니다. 본문 18절,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에 바알세불은 ‘사탄’을 말합니다. 예수를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예수가 귀신의 왕, 사탄의 앞잡이라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예수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이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고 고백하고 신뢰하든지, 아니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앞잡이’(눅11:15)라고 비난하던지. 여러분에게 예수는 어떤 존재입니까? 




예수 통해 이미 온 하나님 나라

   예수가 그리스도, 즉 최종적 구원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익숙한 개념으로 말하자면 ‘세상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른 개념으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세상 구원’이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의 ‘필요조건’이라면, ‘하나님 나라’는 ‘충분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시려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본문 17~22절이 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유대인들이 자신에게 덮어씌운 주장 자체의 논리적 모순을 밝힘으로 그들의 말의 허구성을 드러내십니다. 

   이렇게 그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신 후 이제 자신이 하는 일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밝히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도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증표로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냄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사건,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친 것’은 이사야서35:5~6절의 최종적 구원자, 메시아에 대한 성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는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이미 임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기록합니다. 가장 먼저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심’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1:14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 나라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충만히 드러났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들’을 통해서 세상에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오늘 본문 20절,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이 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골로새서2:15절,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탄 세력을 무력화하고 승리하신 사건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고전15:24~25절 말씀과 같이 사탄의 나라, 즉 사탄의 ‘통치, 권세, 능력’을 멸하시고 모든 원수를 ‘그(예수) 발아래’에 두신 사건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 하나님 아들, 하나님 나라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요1:12). 다른 길,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 복된 소식,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므로 하나님 자녀 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십시오. 이미 이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앞으로 완성 될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음을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 나라, 하나님 통치’가 완성될 것을 기록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완성될 하나님 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 나라를 바라보며 힘써 이루어가야 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26절에서 예수님은 이 하나님 나라의 이중 구조, 즉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중간기를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삶에 대해 경고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 이미 받은 하나님 나라를 구호 정도로, 타성적으로 적용하게 될 때에 이를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러운 귀신’으로부터 놓임 받은 사람이 자신 안에서 더러운 귀신이 나간 것으로 만족하고 비워두는 것으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될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비워두면 이전 귀신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26절)이 들어와 이전 형편보다 더 심하게 망가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미 앞의 이중 구조의 그림을 통해 확인했습니다만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완성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된 성도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어 ‘비워주신 것’에 머물지 않고 계속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죄와 악을 비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서6:4~7절을 읽어봅시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그렇습니다. 하늘의 은혜를 맛보고도 타락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이어지는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그렇습니다.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야 땅이 기경되고 채소를 낼 수 있는 것처럼, 하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 아래 머물도록 힘써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또 이렇게 권면합니다. 히브리서12:28절,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

   그렇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기계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만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그날까지, 아니면 내가 이 생을 마침으로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해서 이루어가야 할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빌립보서2: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과 같이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된 구원이 완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말씀으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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