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설교영상

설교영상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019.06.09오래 숙성된 하나님의 구원

  • 성경본문 : 사도행전 2:1~13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6월 9일 2부예배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누가복음5:39절에도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포도주는 오래 될수록 좋은 듯합니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 13절에 보면 12제자들을 비롯한 예루살렘에 모인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배우지 않았던 지방의 언어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그들에 대해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 조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가 보내신 성령으로 충만해진 성도들을 ‘새 술’에 비유하며 조롱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맛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 충만은 아주 오래 ‘묵은 포도주’같이 ‘오랫동안 숙성된 하나님의 구원이 발현’된 것입니다.


오래 숙성된 하나님의 구원

   본문은 성령님이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또한 내적으로 임하는 최초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12제자들을 포함한 120명의 성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행1:4)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120명의 성도들은 기다리며‘오로지 기도’(1:14)에 힘썼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열흘이 지난 ‘오순절’이 이르렀습니다. 성도들은 이전과 같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2:2)와 함께 ‘갈라지는 불의 혀’(2:3)같은 것이 모인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시작했습니다. 당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천하각국’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왔던 사람들은 각각 자신들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에 대해 “이 어찌 된 일이냐?”(12절)며 놀랐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어떤 이들이‘성도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 조롱한 것입니다. 

   여기 ‘새 술’에 해당하는 헬라어 ‘글류코스’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뜻합니다. ‘새 술에 취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성령에 충만해진 성도들을 ‘발효도 되지 않은 포도즙’에 비유하며 조롱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은 오래 ‘묵은 포도주’같이 오랫동안 준비되어 온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본문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성령강림 사건은 ‘오순절’(1절)에 일어났습니다. 성령강림이 ‘오순절’에 있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보여줍니다. ‘오순절’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데 하나는 농업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인 것입니다. 오순절은 계절적으로는 곡물추수가 시작되는 절기인 ‘유월절’이 7주(칠칠절) 지난 ‘50일째’로 곡물추수가 완성되는 것을 경축하는 절기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오순절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수여 받은 날’로 지켜왔습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50일 후에 일어났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는 ‘추수’와 ‘율법수여’라는 이중적 상징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이 오순절에 일어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의도적 연결’입니다. 성령강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일궈 온 ‘종말에 있을 하나님 백성에 대한 추수’(사5:1-7,암9:13,요4:35)이며, 시내 산에서의 ‘율법수여로 맺어진 언약의 최종적 성취’(렘31:33)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듯 본문의 성령강림이 구약의 출애굽과 시내 산의 십계명과 연관된 오랫동안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과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예외 없이 ‘성령을 선물’(행2:38)로 주십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임한 성령과 그로 인한 구원의 역사는 결코 발효되지 않은 ‘새 술’(글류코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친히 빚어 오신, 종말의 하나님 백성 된 여러분과 저를 위해 남겨 놓으신 극상품의 ‘좋은 포도주’(요2:10)입니다. 그 성령의 은혜와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구원

   오순절에 임한 성령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빚어 온 하나님의 구원의 포도주일 뿐 아니라.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백성이 마시고 누려야 할 ‘생수의 강’(요7:37-39)입니다. 
   성령의 임재로 충만해 진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4절)했습니다. 이들은 다른 언어들을 배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성령은 이들 안에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배워보지 못한 언어들로 ‘하나님의 큰 일’(11절), 즉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120명의 성도들에게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하신 이유는 그곳 예루살렘에 ‘천하만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느 지역에서 온 사람들인지 본문 9~11절에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범위’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배우지 않은 ‘다른 언어들’로 ‘천하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에게 말하게 된 것 역시 성경에 기록된 오래 전 인간의 역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11장에 기록된 ‘바벨탑 사건’입니다. 

   노아 홍수 후 사람들이 땅에 번성하자, 시날 평지에서 모여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11:4)고 결의하고 벽돌을 구워 탑을 쌓아올렸습니다. 이들의 결의와 행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주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힘으로 살 수 있다’는 하나님에 대한 독립선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또한 자신들에 대하여 끔찍한 고통과 죽음의 탑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신 하나님이 이들의 계획을 무산시키십니다. 그것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창11:6~8). 이 사건 후 사람들은 곳곳으로 흩어졌고, 각각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인류적 도발을 할 수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언어가 다르고 그로 인해 소통이 어렵게 된 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징벌이요 심판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 그로 인한 어려움과 장애가 오순절 성령의 임재로 인해 거두어지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창세기11:1-9절에 기록된 바벨탑 사건의 궤도를 정반대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을 흩으셨던 하나님이 ‘천하각국’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난 곳 방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하여 사람들을 모으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사야서11:9,10절 말씀을 성취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줄기차게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명을 보게 하시고 붙들게 하시고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속에서 성령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끄셔서 이 여정을 걷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견인하시고 때로는 추동하십니다. 여러분과 저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알고 ‘천하만국’, ‘모든 민족, 모든 백성’들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겠습니다. 


예수님 몸으로 빚은 구원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가 누리게 된 하나님의 구원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본문 11절은 그것을 간단히 ‘하나님의 큰 일’이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실은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살펴보면 12절의 표현대로 ‘놀라며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11절에서 말하고 있는, 여러분과 제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큰 일’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의 죽음, 부활’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말합니다. 

   본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요한복음1:1~3절 말씀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과 동등한 분’(빌2:6)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신 분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요1:14) 오셨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빌2:7~8)셨습니다. 이유는 히브리서2:11-12,17-18절 말씀 같이 죄로 인해 사탄의 노예가 된 여러분과 저, 죽음에 매여 평생 종노릇하는 여러분과 저를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또한 사탄의 시험과 삶의 시련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여러분과 저를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는 예수님이 치르신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고안해 낸 인류가 만든 최고의 사형 틀인,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며,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3:13)고 규정된 율법의 저주를 그대로 떠안는 것이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라는 말씀 같이 하나님 아버지로 부터까지 버림받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은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시22:14~17)라고 탄식할 정도로 예수님은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마치 농부가 포도즙 틀에 수확한 포도를 넣고 밟듯이 완전히 짓밟히셨습니다. 그는 짓밟혀 그의 ‘선혈이 땅에’ 쏟아졌습니다. 

   이렇듯 여러분과 제가 받게 된 구원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 죄의 대가를 친히 치르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20)고 하신 것처럼 여러분과 제가 받은 구원은 ‘예수님의 피가 쏟아 부어져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받게 된 ‘구원의 잔’은 결코 풋내 나는 발효되지 않은 ‘새 술’이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오랜 역사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이 친히 빚어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받게 된 ‘구원의 잔’은 결코 여러분과 저만 마시고 즐거워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해져야 할 ‘영원한 복음’(계14:6)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받게 된 ‘구원의 잔’은 ‘값없이, 은혜로’(사55:1) 주어졌다고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대가를 치를 수 없을 만큼 아니 대가를 치를 수 없어서 값없이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시편 116:12-14절 같이 주의 구원의 잔을 높이 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 40 Next ›
/ 4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