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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2어떻게 주님 증인의 삶을 살까?

  • 성경본문 : 사도행전 1:12~26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6월 2일 2부예배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저는 생각보다 원대한 꿈과 사명으로 부름 받았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제가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할 증인으로 부름(마28:19~20,행1:8)을 받은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놀라운 꿈을 실현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의 의지와 자원만으로 될 수 없습니다. 이 원대한 꿈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분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성령을 기다리라’(행1:4~5)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이 이 일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떤 자세로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기다렸을까요? 


더불어 힘써 기도함으로

   첫째로 제자들은 ‘더불어 힘써 기도함으로’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기다렸습니다. 제자들은 게으르게 앉아서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힘써 기도함으로 성령의 임재를 기다렸습니다. 본문 12~14절을 읽어봅시다.
   모인 무리가 120명(15절) 정도였는데 이들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기도와 성령의 임재와 충만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만이 아닙니다. 지나온 기독교 역사는 교회 공동체가 마음을 같이하여 전심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했던 것을 허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도의 결과로 반드시(기계적으로)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3: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는 말씀 같이 성령의 임재와 충만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임재와 충만은 기도로 준비된 사람에게 임합니다. 성령과 기도의 관계는 마치 내리는 비와 그 비를 담을 그릇과 같습니다. 아무리 폭포수와 같은 비가 내려도 엎어놓은 그릇에는 물 한방울 담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놓여 진 그릇에는 예외 없이 채워집니다. 기도는 마음의 두 팔을 벌려 성령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두 팔을 벌려 손을 든 기도의 형상은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든 것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채우실 그릇의 모양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김회권 목사님은 “성령이라는 선물은 누적된 순종을 비친 사람들에게 배달되는 믿음의 선물이다.” 라고 표현했는데, 아주 적절할 표현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께 두 손 든 기도의 사람에게 임합니다.

   제자들을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이 어떤 기도를 했을까요? 약속하신 성령을 내려 주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 같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위해 구하는 것은 부연할 필요 없이 중요합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죄 사함’ 받을 때에 선물로 주시는 성령(행2:38절,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에 대한 경험 없이 공동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운동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교회를 이룬 공동체는 각자의 구원과 성령의 임재와 동행만을 위한 기도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본문의 성도들 같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할 뿐 아니라 ‘오직 힘써’(14절)기도해야 합니다. 존 칼빈의 말과 같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함’과 ‘오직 힘씀’, 즉 ‘연합’과 ‘끈기’는 참된 기도의 본질적 두 요소입니다. 모닥불이 쉽게 꺼지지 않고 타오르듯이 더불어 함께하는 끈질긴 기도가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불러옵니다. 


성경말씀에 천착함으로

   두 번째로 제자들은 ‘하나님 말씀에 천착함으로’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기다렸습니다. 자신들의 상황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고 해석함으로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기다렸습니다.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은 사도 베드로였습니다. 본문 15~17,20절을 읽어봅시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놓인 상황을 성경말씀에 비추어 해석하고, 말씀을 통해 대안을 찾음으로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기다립니다. 먼저는 가룟 유다의 변절과 죽음에 대한 의미에 대한 성경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이어서 공석이 된 사도의 자리에 대한 보선의 타당성에 대한 성경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0절 전반부는 시편69:25절을 인용한 것이고 20절 하반부는 시편103:8절을 인용한 것인데 두 시편은 모두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대적자들로 인해 하나님께 드린 기도 중의 일부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렇듯 베드로, 실은 베드로 뿐 아니고 모인 성도들은 자유로이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해석하고 대안을 찾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으로 넘어가면 베드로는 요엘서 2장의 말씀으로 성령 강림의 예언과 성취에 대해, 시편16편과 110편의 인증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다스림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와 함께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담는 또 다른 그릇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온전한 순복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했습니까? 본문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누렸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해석하고 깨달을 때’입니다. 느헤미아8:8~9,12절을 읽어봅시다. 

   안타깝게도 이런 모습이 우리들에게서 점점 더 사라집니다. 수년 전에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잡지, ‘크리스천투데이’에 실렸던 통계가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 가운데 83%가 자신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으며, 76%는 자신이 매일 기도 응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반면 이들 중 대부분은 정작 성경의 내용을 거의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히스기야, 데오빌로, 모세, 야고보를 시대에 따라 배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지도 않고,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천국을 갈 수 있다고, 기도 응답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럽습니다. 우리들의 실상은 어떨까요?

   성경 말씀이 소홀해진 기독교,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선명하지 않은 기독교는 명칭들만 바뀐 무속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의 내용을 열심히 살피고 붙들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우상화된 종교성이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거듭나 구원받고(벧전1:23), 말씀으로 성장성숙하며 말씀으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한 능력(딤후3:15~17)을 갖추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으로 자신과 세상을 해석하고, 깨달은 말씀대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비와 같이 임하는 성령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역사의식에 깨어있음으로

   마지막으로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구원역사 의식에 깨어 있음으로’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기다렸습니다. 망가지고 깨진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 놓인 자신들의 정체성과 사명을 바로 인식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관점에서 세상과 역사를 보는 것을 가리켜 ‘구원사’(救援史)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이 구원역사의 일환으로 깨닫고 그 구원계획에 합당하게 조치해 갔습니다. 그 구체적인 조치는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인해 결원된 ‘사도를 보선’하는 일이었습니다. 본문 21~26절을 읽어봅시다. 

   베드로 사도의 제안에 따라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결국 비참함 죽음에 이른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 한 사람을 충원하기로 결정합니다. 모인 사람들이 결원이 된 한 사람을 충원하여 12사도로 구성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야곱의 12아들들이 구성원으로 시작된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새 이스라엘’의 모체로서의 온전한 형태를 복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12사도는 새롭게 된 이스라엘, 회복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집단인 것입니다. 12사도를 이루기 위한 보선은 요한계시록21:14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라는 말씀 같이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백성들이 머물 성,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을 완비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구원역사의 한 부분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야곱의 열 두 아들을 기초로 구성된 ‘옛 이스라엘’과 예수님의 12 사도들로 구성된 ‘새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결국은 ‘온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십사 장로들’(계4:4,10,5:8,11:16)은 바로 이 ‘옛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의 기초가 되었던 야곱의 12지파와 예수님의 12사도들을 합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여러분과 저 또한 본문의 사도들을 포함한 120명의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것 같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통해 세상은 빛 되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고 생명 되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구원역사 의식으로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사모하고 기다리십시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유사하게 기도합니다. 에베소서1:18~23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렇듯 마음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 나라의 구원계획과 그 계획 중에 한 부분이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깨달음과 동의와 헌신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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