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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9오십 해를 지나며 다시 꾸는 꿈

  • 성경본문 : 사도행전 2:42~47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5월 19일 2부예배


‘만 명이 목표라니 참 대단해, 어느 교회는 오백 명 넘기도 힘 드는데...’ 라는 지인의 말에 ‘그러면 숫자가 적은 교회는 별 볼일 없는 교회란 말인가요?’라고 불편한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교회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습니까?‘교회’는 고린도전서1: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부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위대함과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교회의 위대함과 영광스러움을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구성의 숫자나 모이는 예배당의 크기가 아니고, 그 교회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나?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하는가? 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은천교회가 설립된지 50년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은천교회는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습니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풍기고 있습니까? 교회의 본질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본문 말씀을 통해 지금까지의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어 볼 뿐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가야 할 꿈을 다시 그려보고자 합니다.

감사하고 대망하며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처음 이루고 있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고 결과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이미’ 베푸신 구원, 자신들 안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감사’할 뿐 아니라, 그 구원과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을 ‘대망’하며 예배드렸습니다. 본문 46-47절 상반절 말씀같이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전에서 모여 예배하기를 힘쓰고 또한 집에서, 삶의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 예배하기를 힘썼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예배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자신들이 존재하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일군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니예배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8:6절,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라는 말씀같이 여러분과 저, 세상 만물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존재하고 또한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예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기를 힘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요4:23-24). 사람들은 점점 더 예배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또한 그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림으로 예배합시다. 이미 시작된, 결국 완성될 하나님의 통치와 회복을 감사하고 대망하며 예배하기를 힘씁시다!

진실한 하나님 가족으로 서로를 돌봅니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누리게 됩니다. 진정한‘행복’또한 ‘관계’를 통해 옵니다. 이 땅에 처음 지음 받았던‘아담’이‘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았던 것(창2:18)처럼,‘홀로되는 것’은 불행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점점 더 홀로되어 갑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산업화로 인한 편리함과 이익이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고, ‘혼밥, 혼행, 혼술, 혼영’등‘나 홀로 족’이 늘어나고,‘솔로 이코노미’규모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홀로되면 될수록 외로움과 소외감 또한 더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다른 사람들과의 진실한 관계’를 필요로 합니다. ‘예배’가 하나님과의 관계의 방식이라면 ‘진실함’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을 진실함으로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44-46절 전반절 까지를 읽어봅시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본문을 중심으로 교회 공동체의 교제의 핵심을 세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공유하는 것’ 즉 ‘공동의 유산’과 ‘나누는 것’ 즉 ‘상호 책임’과 ‘나누어 주는 것’ 즉 ‘공동의 봉사’입니다.

우리의 공동의 유산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신 가족입니다. 우리는 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롬12:5)입니다. 우리는 한 위로자 ‘성령의 전’(고전3:16)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의 범위 내에서 서로를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 신약성경 곳곳에 등장하는 ‘서로’에 이어져 나오는 모든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공동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요3:16)하심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고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되기까지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균형있게 성장해갑니다!

본문이 보여주는 교회의 본질, 세 번째는 교회는 삶의 전 영역에서 균형 있게 성장해 가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본문 42절 전반절을 읽어봅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지 않는 것은 부모에게 있어서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일 것입니다. 또한 전인적(지정의)으로 성장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성장한다거나 반대로 어느 한 부분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바라보는 부모에게 큰 고통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 역시 신앙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사도들의 가르침’즉‘성경말씀’은 필수요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3:1-2절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인 성경말씀은 마치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 매끼 먹어야 할 ‘젖과 밥’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건강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에 힘씁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거듭나고(벧전1:23), 거룩하게 되며(딤전4:5), 온전해지고 능력을 갖추게(딤후3:16-17) 되기 때문입니다.

단지 성경을 지식적으로 배운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의 가르침’에는 말씀에 대한 ‘권위와 순종’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신앙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순종해야 성장합니다. 에베소서4:13-15절 아는 대로 믿고, 믿은 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 성숙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의 전 영역에서 균형 있게 성장해 가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수하고 전파합니다!

네 번째 본문이 보여주는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고 전파하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중적 정체성을 지닙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세상에서 부름 받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의미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밖으로’라는 말과 ‘부르다’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밖으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그리스 도인은 다시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래 동안 ‘예배’를 ‘미사’라고 불러왔습니다. 이 말은 예배 끝에 예배 인도자가 회중을 향해 ‘이테 미사 에스트’ 즉 ‘미사가 끝났으니 가십시오’라는 말에서 생겼습니다. 단지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하시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거듭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12제자들을 둘씩 짝으로 보내셨고(막6:7), 70명의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워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눅10:1)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명령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28:19-20)는 것이었습니다.

본문47절이 보여주듯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은 ‘온 백성에게 칭송’받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이들의 모습과 삶을 보고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로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말과 삶’입니다. 우리는 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말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1:5절,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는 말씀 같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다음 절에 나오는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과 삶’으로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수하고 전파하는 공동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로 세상을 섬깁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교회의 본질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로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세상을 변혁시켜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통치 원리로 세상을 다스리십니까? 시편89:14절,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라는 말씀같이 ‘공의와 인자’ 즉 ‘정의와 사랑’이 ‘하나님의 보좌’ 즉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과 섬김으로서 공의를 이루신 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서2: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고 한 것처럼 모든 믿는 사람들의 마음의 자세요 삶의 자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계명(레19:18,막12:29-31)에 순종함을 통해 세상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로 변해갑니다. 결국은요한계시록11:15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는 말씀대로 ‘세상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박국2:14절,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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