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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8사명과 긍휼 사이에서!

  • 성경본문 : 사도행전 15:30~41
  • 설교자 : 홍순설목사
  • 예배일자 : 2020년 1월 26일 2부 예배
   민족대명절인 설입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과 친지들의 얼굴을 보면 반갑고 기쁘기만 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설 직후인 2~3월과 추석 직후인 10~11월의 이혼 건수는 직전 달 대비 평균 11%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혼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명절 때마다 집안일이나 말다툼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서로에 대한 은혜를 감사하며 기뻐해야할 명절이 반목과 갈등의 장이 되지 않도록 서로 주의하고 배려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입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이상, 당위와 개연,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 사명과 긍휼’ 사이에 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둘을 대하는 지향과 그 정도가 백사람이면 백사람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경을 읽는 성도들에게 적잖은 의아와 실망을 안겨주는 두 지도자 바울과 바나바간의 다툼과 분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갈등의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거룩한 교회와 거룩한 성도


   지난주일 살펴보았듯이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은 할례 없이도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 구원 진리에 대해 당시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교회 지도자들의 ‘만장일치’(26절)의 가결을 이끌어 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총회가 이룬 거룩한 결의를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기쁨으로 전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공회가 결의한 모든 내용을 ‘기쁨’(31절)으로 받았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전달 받은 내용 중에는 하나님 백성이 되는 데에 ‘할례 필요 없음’ 같은 자신들을 ‘자유’(28절)하게 하는 것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29절)을 금할, 네 가지 금지규정이 함께 부과되었습니다. 이 네 가지 중에는 ‘음행’과 같은 누구라도 기꺼이 동의할 만한 도덕윤리적인 요구사항 뿐 아니라,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 같은 풍습에 관한 문제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것들이 율법에 기록되어 있어 혐오해서 금지해왔지만 이방인들은 거리낌 없이 취해왔던 것들입니다. 구원이 율법이 아닌 은혜와 믿음으로 받는 진리의 ‘본질’이 분명하다면 사회문화적인 풍습 같은 ‘비본질적인 것들’로 구원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 총회가 결의한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총회는 하나님의 교회다운 ‘거룩한 결정’을 하였고,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거룩한 하나님 백성답게 그 결정을 전폭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을 기꺼이 존중하고 기쁨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돌아오는 주간 암송구절,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라는 말씀 같이 거룩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교회됨을 넉넉히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과 저, 은천교회가 안디옥교회 같은 거룩한 교회, 거룩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복음과 교회됨의 본질에 합당한 결정을 하고, 성도들은 때로는 그 결정에 부과된 짐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기뻐하며 수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큰 결실 뒤에 찾아온 실패


   사람들은 종종 큰 싸움에 승리한 후 작은 싸움에 실패하는 실수를 범하곤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이 예루살렘 총회의 놀랍고 거룩한 결의를 주도했던 두 지도자,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사역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1차 전도여행 지역교회들의 형편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36절). 바나바는 이 2차 전도여행에 ‘마가 요한’을 동행시키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반대하였습니다. 바울이 반대한 이유는 마가 요한이 1차 전도여행을 동행하다가 밤빌리아에서 중도하차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유에 대해 성경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만 마가의 중도하차가 바울을 비롯한 일행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것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9:62)라는 주님의 말씀을 떠 올렸을지 모릅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2~23)라는 자신의 사명에 대한 결의와 각오에 비추어볼 때에도 마가 요한을 동행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이 문제로 상당한 격론과 다툼을 겪습니다. 37~39절 전반절을 읽어봅시다. 39절에 ‘심히 다투다’라는 말로 번역된 원문 ‘프록쉬스모스’는 ‘격심한 불화’를 의미합니다. ‘발작’을 뜻하는 영어 단어 ‘파록시즘’(paroxysm)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 만큼 바울과 바나바가 심할 정도로 부정적으로 고양된 감정, 말, 태도로 다투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의아하지 않을 수 없고,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의 다툼은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부름을 받은 사람이요, 독신으로 평생을 복음 선교에 힘쓴 사람이요, 신약성경 중 13권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행11:24)이요, 자신의 밭을 팔아 교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던, ‘위로의 아들’(행4:36~37)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갈등과 다툼이 없을 것이라는 낭만적 기대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도 종종 갈등과 다툼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유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을 보면서 사람 간의 다툼은 보통 ‘사소한 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은 구원진리와 같은 중차대한 신학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차 여행에서 중도하차했던 마가 요한을 다시 동행시킬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였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의 주장이 다 옳습니다.

   문제는 이 둘이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가치 있는 일, 위대한 일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섰습니다. 본문 39절 하반절~41절을 읽어봅시다. 이렇듯 사람간의 다툼은 때로 결국 ‘갈라서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분리’가 복음진전의 유일한 방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어쩔 수 없는 분리’가 갈등봉합을 위해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한 손쉬운 선택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분리는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분리 이전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간구하고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갈등의 아픔과 치유의 은혜


   성경을 읽을 때에 종종 거북스럽지만 그것을 통해서 놀라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연약함과 실수를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기자 역시 바울과 바나바 간의 다툼과 분열을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과 분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이제 막 싹을 띄우려는 찰나에 내린 서리와 같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앞에서 열거한 사람들의 사건들의 결말들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연약함과 실수를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실례 중 하나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1차 전도여행의 첫 기착지였던 ‘구브로’로 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육로로 북쪽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향해 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으로 이뤄졌던 하나의 복음전도대가 바나바와 마가, 바울과 실라로 짝을 이룬 두 개의 전도대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록 좁히지 못한 의견 때문에 갈라서 다른 길을 갔지만 둘 사이가 완전히 깨어진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9:6절,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라는 말씀을 근거로 유추해 보면 여전히 바울은 바나바를 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각각 동역자로 삼은 마가와 실라는 이후 복음전도 역사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역할을 할 사람들로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일꾼 또한 두 배가 된 것입니다. 바울과 동행한 ‘실라’는 이후 성경 속에서 ‘실루아노’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실라는 바울에게만 아니라 베드로전서5:12절 말씀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듯이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교회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에게 큰 실망을 안겼던 마가요한은 어떻습니까? 마가요한은 본문에서는 바울과 갈라져 서로 다른 길을 갔지만 이후에 바울과 교회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으로 남습니다. 바울은 훗날 기록한 여러 서신들을 통해 바나바와의 다툼과 요한에 대한 자신의 냉대가 지나친 자신의 고집이었음을 인정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의 옥에 갇혀있던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9,11절)라고 쓰고 있습니다. 골로새서4:10~11절,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라는 말씀같이 마가요한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기 까지 하였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실라, 마가의 관계들을 통하여 사람들의 연약함과 실수, 그로 인한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결국 선한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과 죄에서도 큰 선을 이끌어내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다툼과 갈등은 회복 가능합니다. 갈등과 다툼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세상 삶’의 일부입니다만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있는 한, 아무리 심한 다툼이라도 선한 결과를 보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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