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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2도대체, 왜들 이러십니까?

  • 성경본문 : 사도행전 14:8~18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20년 1월 12일 2부예배

   사람의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다르지 않은 본성가운데 하나는 사람은 태생부터 종교적이라는 것입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종교적 심성이 있습니다. 특별히 ‘어느 종교’에 귀의하여, 그 의식을 따라 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은 애초부터 종교적 존재입니다. 

   4세기 교부 성 아우구스투스가 하나님에 대해, “인간은 당신 안에서 쉼을 얻기까지는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존재 근원인 하나님에게 이르기 전에는 자신 안에 있는 종교적 심성을 채우기 위한 갈망과 방황을 멈출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에게 이르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체물(우상)들을 끊임없이 찾아 방황하다가 결국은 하박국1:11절,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神)으로 삼는” 자리에 이르고야 맙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신들의 존재의 근원을 향한 사람들의 본성적 방황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본문을 통해 존재적 근원을 향한 사람들의 본성적 방황의 양상을 살펴보고, 모든 사람이 이르러야 할 존재의 근원은 어디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신화와 우상숭배의 세상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며 이고니온을 거쳐 루스드라에 이르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9절)이 있는 것을 주목하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10절)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행한 일을 보고‘신들이 사람들의 형상’으로 자신들에 임했다고 소리를 지르고‘바나바’를‘제우스’(로마신화에서는 주피터)라 하고‘바울’을‘헤르메스’(로마신화에서는 머큐리)라고 하며,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과 함께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바나바와 바울에게‘제사’하고자 한 것(13절) 입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원시적 우상숭배를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시 사람들은 올림푸스 신화의 신들 중 최고의 신 제우스와 그의 대변인 신인 헤르메스에게는 황소를 제물로 드리고 화환을 올려놓는 제사를 해왔던 것입니다. 루스드라 주민들은 히브리인들의 율법도, 헬라인들의 철학(행17:16~18)도 알지 못했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저 원시적인 신화와 미신방식으로 큰 능력을 행한 바울과 바나바를 숭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 안에는 자신들보다 큰 능력을 지닌 존재를 숭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실은 이 모든 마음들이 궁극적으로 이르러야 할 곳은 본문 15절이 말하고 있듯이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에는 단지 본문의 루스드라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 같은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숭배는 데이비드 클락슨 선교사가 분류하듯이 ‘물질적 형상’ 앞에 실제로 무릎을 꿇고 절하는 ‘외적인 우상숭배’와 ‘영혼의 행위’인 ‘내적인 우상숭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끊어버릴 수 없었던 것이 우상숭배, ‘산당제사’였습니다. 민수기33:51~53절 말씀 같이 가나안 땅에는 그 땅의 원주민들이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민33:52)들을 섬기는 ‘산당’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여야 할 첫 번째는 이 우상들을 다 깨뜨리고 그들을 모셔둔 산당을 헐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깨뜨려버리지도 ‘산당’들을 헐어버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만큼 우상숭배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뿐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지배했던 것입니다. 

   우상숭배에는 위와 같은 ‘외적인 우상숭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행위’인 ‘내적인 우상숭배’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골로새서3: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기록한 것 같이 실은 사람의 부패한 마음 안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외적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하더라도 팀 켈러가 말하듯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줄 수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자 존 칼뱅이 말하듯이 ‘인간의 마음은 우상공장’입니다.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

   사람을 포함해 세상 만물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우연히 물질간의 충돌과 조합으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오랜 시간만 보장된다면 여러분과 저, 그리고 세상 만물의 존재의 수효와 조화의 놀라움과 신비로움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포함해 세상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이 지어내셔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서40:26절을 읽어봅시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도행전17:24~26,28절도 읽어봅시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요한복음1: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는 말씀 같이 여러분과 저를 포함해 세상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셔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신과 세상의 존재의 근원인 창조주 하나님, 천재의 주재인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는 자신에 대해서 뿐 아니고 세상 만물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치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눅15:12~17)이 ‘자신을 유익하게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숭상’(삼상12:21,욘2:8)한 것 같이 헛된 것들을 쫓아다니며 인생을 탕진하게 되고 맙니다. 본문 15절에서 사도바울은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사람은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삽니다. 그 길만이 살길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에 여러분과 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천재의 주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오묘한 섭리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연속인 일상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제사하고자 했던 이유는 바울과 바나바가‘한 일’(11절)때문입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에게 바울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라는 말 한마디에 서고 걷게 된‘기적’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이 행한 기적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게 된 것’은 ‘흙이 사람이 된 것’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과 저, 사람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창세기2: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는 말씀같이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기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적 중의 기적은 여러분과 제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만물 뿐 아니고 여러분과 제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본문 17절에서 바울은 그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그렇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시고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은 하나님”(행17:25)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포함해 세상 만물은 그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행17:28)합니다. 이렇듯 여러분과 제가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하나님은 너무도 광범위하고 또 일상적으로 해 오고 계십니다. 시편 기자들이 거듭 찬양하듯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이한 일’은 너무 많고 깊고 넓어 다 알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 뿐입니다. 

   C.S 루이스는 우리들이 ‘기적’이라고 일컫는 것에 대해서 ‘그것은 그 분이 늘 하고 계신 그 일’, 말하자면 ‘지름길로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평상시에 너무 크고 광범위하여 사람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을 바로 가까기에서 또렷하게 보이도록 그 과정을 단축시켜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도서11:5절,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라는 말씀 같이 사람의 한계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뿐 본문의‘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게 되는 것’ 같은 ‘치유’,‘오병이어’(막6:35~44) 같은 ‘증식’,‘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탄생’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수를 헤아리기 불가능할 만큼 놀랍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것들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만물과 사람의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돌아와 그 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분에게 잇대어 사는 것, 그 분에게 자신을 의탁하고 사는 것을 가리켜 성경은 ‘구원’,‘영생’이라 부릅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께 여러분의 삶을 돌이키십시오. 거기에 살길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 교역자들이 만 사흘간 성경전체를 통독하는 수련회에 다녀왔습니다. 시간마다 은혜가 있었는데 특별히 욥기를 읽으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욥의 고난과 대한 탄식에 대한 공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 없을’(욥4:19~20)존재인 나,‘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같은 내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며 내 인생이 무엇이기에 나를 생각하시는가?(욥7:17,시144:3~4)하는 깨달음과 감사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만물을 지으셨을 뿐 아니고 여러분과 저, 각자를 지으시고, 알아주시고, 생각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분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가십시오. 거기에 살 길이 있습니다!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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