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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3하늘 식탁과 하늘의 은전

  •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11:17~34,14:26~33
  • 설교자 : 홍순설목사
  • 예배일자 : 2020년 11월 22일 주일예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낙심한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 중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로 낙향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는 그들의 얼굴은 슬픈 빛으로 가득했고,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노정에 합류하셨으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충격과 슬픔, 의심과 회의가 믿음의 시야를 좁히고 흐려놓아 자신들과 동행하시는 그리스도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제자들과 동행하신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최종적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눅24:27,44) 즉 ‘성경말씀’을 통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날이 저물 때에 엠마오에 이른 그들은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고 떼어주시자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다. 이후 제자들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얼굴은 환희와 확신의 빛으로 가득했고, 밤이었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날듯이 달렸습니다(눅24:30~34).

   일련의 사건은 그리스도교 은혜의 방편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성령께서 사람에게 믿음을 일으키고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은혜의 수단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성례와 말씀’입니다. 사람은 이 두 은혜의 통로를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요17:21)거하는 신비한 연합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 두 은혜의 방편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교 은혜의 두 방편에 대해 알아보고, 어떻게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식탁과 하늘의 은전 

   두 주 전에 고린도전서 11~14장에 걸쳐 기록된 새로운 주제,‘예배’에 대한 첫 번째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배에 대한 말씀 역시 히브리인들의 전형적인 글쓰기 방식인‘교차평행법’에 따라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두 주전 설교에서는 그중에서 맨 바깥쪽에 위치한 11:1~16절과 14:34~40절을 통해,‘예배를 인도하는 남자와 여자, 예배에 참여하는 남자와 여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한 단계 더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11:17~34절과 14:26~33절 상반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예배의 핵심적인 두 가지 요소이며 그리스도교 은혜의 두 방편인, 성찬과 말씀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어떤 요소들로 구성됩니까?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정형화된 틀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본문14:26절에 의하면 예배에는 ‘찬송과 말씀, 계시과 방언과 통역’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것을 정형적인 예배의 틀로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의 요소는 시대에 따라 가감되어 왔고 그 순서도 가변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예배의 핵심적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바울이 제시하듯이‘성찬과 말씀’입니다. 

  개신교예배는‘말씀’이 중심 입니다. 반면‘성찬’을 비롯한 성례는 중세교회의 성례오용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소홀히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하나님의 ‘새 언약’(고전11:24)입니다. 성찬은 아브라함과 이삭, 모세와 다윗과 맺어온 하나님 언약의 최종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는 성찬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던 ‘새 언약’이 성취된 것을 지금 여기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11:23~25절 말씀같이 예수님이 명하시고, 바울이 권면하는 성찬을 교회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증표와 보증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요한복음6:53,56~57절 말씀처럼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과 신자의 연합의 유무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증표입니다. 성찬은 하나님의 식탁으로의 초대입니다. 성찬은 신자가 하나님과 한 상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은혜와 권리와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찬과 함께 신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의 통로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6:63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같이 신자에게 하나님말씀은 곧 생명입니다. 시편119: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말씀같이 하나님 말씀은 성도의 인생길을 밝히는 등과 빛입니다. 디모데후서3:15~17절 말씀 같이 신자는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받게 되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시편19:7~8절 말씀같이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소성시키며,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합니다. 이렇듯 하나님 말씀, 성경은 아브라함 헤셀의 표현대로 ‘하늘이 인류에게 내린 최고의 은전(恩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하늘의 은전답게 대하여야 합니다. 

   성찬을 통해 하늘의 식탁으로 초대되고, 하늘의 은전인 하나님 말씀을 소유하고 누리게 되는 것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놀라운 선물답게 성찬과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합당하게 여기고 누리는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누추하게 된 식탁과 은전

   문제는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들을 사람들이 누추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마태복음7:6절,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는 말씀같이 진주같이 거룩한 성찬과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모르고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1:18,20~22절을 읽어봅시다. 이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고린도교회는 성찬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성찬을 행하였습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한 몸과 피를 나누는 것입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고 또한 더 나아가 그리스도 몸의 지체가 된 ‘다른 성도와의 연합’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내포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분쟁으로 성찬에 담긴 가장 중요한 가치인 ‘하나 됨’을 산산 조각냈습니다. 시간과 재물의 여유가 있어 일찍 예배당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기 만찬을 먼저 갖다 먹음으로 취’했습니다. 반대로 시간과 재물의 여유가 없어 빈손으로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앞에 사람들이 다 먹어버려 먹을 것이 없어서 ‘시장하게’(11:21)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교회는 교회답지 못하게 ‘업신여겨’졌고, 교회내의 ‘빈궁한 사람들은 부끄럽게’(11:22)되었습니다. 성찬을 행함으로 교회가 더‘거룩’해지고, 성도들이 더욱 더‘하나’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성찬을 행함으로 교회는 더 누추해지고, 사람들은 판단 받는 모임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성찬뿐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는 하나님 말씀도 거룩하게 받고 나누지 못했습니다. 뒤쪽 본문 14:26~33절에서 바울이 이것에 대해 권면합니다. 고린도교회는‘예언’즉 설교와‘방언과 계시’에 있어서‘무질서’(33절)하게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방언’으로 교회에서 말할 때에는 반드시‘통역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만 허용(14:28)되어야 한다고 권합니다. 또한‘예언하는 자’즉 설교하는 사람은‘둘이나 셋’으로 한정하고 다른 이들은 그들의 예언(설교)을‘분별’(14:29)할 것을 권면합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계시’를 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계시에 의해 제재될 수 있어야(11:30) 한다고 권합니다. 요지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전해지고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우리는 본문 당시의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이 했던 것 같이 무례하고 무질서한 성례를 행하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강론하는 것이나 방언과 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적으로는 규모 있고 질서 있게 행합니다. 하지만 내적으로도 그런지 늘 확인되어야 합니다. 

   본문11:27~29절을 읽어봅시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성찬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고 누리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답게 전하고 듣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룬 지체로서 받아들이고 존중함으로 성찬을 나누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의미와 의도를 ‘일점일획’이라도 놓치지 않고 온전히 드러내고자(마5:17~18) 말씀을 전하고, 청중들은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라는 자세와 심정으로 말씀을 받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찬과 말씀이 누추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야 성찬이 하늘의 식탁답게 생명으로 넘치고, 말씀도 하늘의 은전으로 빛나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자 낙향한 제자들 중에 북쪽 갈릴리 출신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해 야고보와 요한 등입니다. 이들은 낙향해 예전같이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호수로 나갔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심으로 많은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인 줄 알아보고 그물을 끌고 육지로 나왔습니다. 육지에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육지로 나온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와서 조반을 먹으라!”(요21:12)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낙향했던 제자들은 얼음기둥처럼 굳어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하셨습니다(13절).‘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15절) 예수님의 물음은 베드로와 제자들을 질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연약함, 믿음 없음, 배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회복시키시는 은혜의 두 방편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배설하신‘떡과 생선’이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의‘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자는 이 두 은혜의 통로를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더욱 깊이 깨닫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의 두 방편, 성찬과 말씀을 소중이 여기시고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고린도전서 제 11장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고린도전서 제 14장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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