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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넘어질까 조심하라!

  •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10:1~22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20년 11월 1일 2부예배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구원은 틀림없습니까? 우리들에게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여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0:28절,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씀 등이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신자의 구원은 빼앗길 수도, 상실할 수도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11:22절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구원에 관하여서는 어느 한쪽 말씀만을 확신하고 의지하는 것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두렵고 떨림’이 상호긴장을 이루며 동시에 있을 때에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 안에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온전히 최종에 이르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거울이 된 역사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할 것을 이스라엘의 선조들의 행적을 예로 들어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 선조들이 출애굽 후 경험한 사건들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설명합니다. 

   애굽 왕 바로에게 430년간 종노릇하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구원)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사건들을 겪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임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2절, 출13:21~22). 이스라엘은 홍해바다 밑을 ‘마른 땅’같이 건넜습니다(2절, 출14:21). 바울은 이 두 사건이 이스라엘 선조들이 구원받은 증표이며 물로 ‘세례’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광야 길을 가면서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 만나’를 매일의 양식(3절, 출16:4,15)으로 먹었습니다. 물이 없는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반석을 치게 해, 반석에서 낸 물(3절, 출17:5~6)을 마셨습니다. 바울은 이 두 사건 역시 이스라엘 선조들이 구원받은 증표로  ‘성찬’, 즉 ‘신령한 음식, 신령한 음료’(3~4절)에 참여한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놀랍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구원의 사건들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세례 받고, 성찬에도 참여한 이스라엘 중 다수가 결국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요인 네 가지를 본문 7~10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7절). 이스라엘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증표로 십계명을 받아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그것이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며 ‘앉아서 먹고 마시고 뛰놀았’(출32:1~6)습니다. 둘째는 음행 때문이었습니다(8절). 이스라엘은 광야 길을 가는 중 가나안 신 바알 브올을 숭배하는 모압 여인들의 꾐에 빠져 그들과 음행하고, 그들의 신에게 절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이 일로 이스라엘 사람 23,000명이 염병으로 죽었습니다(민25:1~9). 셋째는 시험 때문이었습니다(9절). 시편78:18~19절 말씀같이 이스라엘은 ‘과연 하나님이 자신들을 인도하실 수 있을까’라고 의심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넷째는 원망 때문이었습니다(10절).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미리보고 온 정탐꾼들이 그곳에 있는 아낙 자손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같다는 부정적인 보고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민14:1~2)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들을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 6절과 11절에 기록되었듯이 ‘이러한 일들을 본보기’(6,11절)로 삼으라는 것에 있습니다. 


구원의 세 시제

  고린도교인들 뿐일까요?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과거에 세례 받고, 성찬에 참여한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그 세례와 성찬이 자동적으로 최종적인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려고 힘쓰지 않으면 구원은 상실되고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본문을 비롯해 성경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읽어봅시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것은 구원받았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그 구원이 상실될 수도 있음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권면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누가복음21:34,3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구원의 양상과 관련하여 시야를 넓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제로 표현합니다. 존 스토트는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세 가지 시제로 표현된 구원을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첫째,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로 인해 죄의 형벌에서 과거에 이미 구원받았다! 둘째, 나는 부활하신 구세주로 인해 죄의 세력에서 현재 구원받고 있다! 셋째, 나는 다시 오실 구세주로 인해 죄의 존재에서 미래에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에베소서2:8절 말씀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으로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빌립보서2: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같이 지금 여전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로마서5:9절“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씀같이 장래에 있을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영원히’ 구원받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세 시제로 제시된 하나님의 구원의 양상 중에서 ‘현재의 구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을 믿는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확신하고 감사할 뿐 아니고, 그 믿음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서 있으라고 합니다. 
  바울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히3:12~14). 예수님과 바울,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같이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을 마지막까지 ‘두렵고 떨림, 조심스러움과 신실함’으로 이루어 가는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세성도의 처신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의 권면은 다시 우상과 우상의 제물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14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이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이어서 명령에 따른 이유를 설명합니다. 16절을 읽어봅시다.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히9:12)를 이루신 하늘의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성찬 즉 ‘주의 잔과 주의 식탁’에 참여한 사람들이 ‘귀신의 잔과 귀신의 식탁’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는 것(21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하게 정체성이 드러난 우상제사에 참여하거나, 우상숭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눈앞에는 사도행전 17장의 아덴에 있던 원시적 형태의 우상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지도 않습니다. 실은 물리적 우상들 자체는 목석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에스겔서14:3절,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라는 말씀같이 우상들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우상들을 자신이 의지할 삶의 주인으로 마음에 들여놓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뱅은 ‘인간의 마음은 우상공장’이라고 했습니다. 

   팀 켈러는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보다 더 차지하고 있는 것,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우리 문화와 사회에 깃든 우상들 다섯 가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것은 ‘사랑, 돈, 성공, 권력, 나’입니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의 욕구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재물은 꼭 필요하고 유용한 것이지만 그것이 자기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면, 재물은 우상이 되어 사람을 부립니다. 성공과 권력도 동일한 방식으로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나르시즘, 자기도취에 빠지면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덧붙이자면 ‘쾌락, 이데올로기’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현대적(?)우상의 제사에 참여하고, 이런 우상제물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21절에서 단호히 선포합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그렇습니다. 양다리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찬, ‘주의 잔, 주의 식탁’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고, 아무리 좋아보여도 ‘우상의 잔, 우상의 식탁’을 기웃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말세(종말)를 살아가는 성도의 마땅한 처신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이단, 구원파식의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오만과 자만에 빠져 살지 않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은혜로 받은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일생을 다해 이루어갑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나날을 ‘말세’(11절)로 깨달아, 교묘하게 마음을 지배하는 우상과 그 제물의 달콤함을 분별하여 살아갑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을 삶의 본보기와 거울 삼아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며”(딛2:12~13)삽시다. 그런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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