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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4독신의 은사와 재혼의 자유

  •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7:6~9,25~40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20년 10월 4일 2부 예배


   올해 5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30세대 성인 미혼남녀 568명을 대상으로 결혼에 대해 설문을 조사했습니다. 결혼은 필수인지 선택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결혼은 필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14.7%, ‘결혼은 선택이다’라는 응답이 85.3%였습니다. ‘향후 결혼 의사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앞으로 혼인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69.7%, ‘혼인계획이 전혀 없다’라는 응답이 30.3%였습니다. 

   이런 통계도 있습니다. 2018년 기준 서울시에서 한 해 52,005쌍이 결혼하였습니다. 그중 초혼은 46,078건, 재혼은 5,729건입니다. 재혼비율이 10%가 넘습니다. 

   이렇듯 독신과 재혼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독신과 재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주일에는 고린도전서 7장 전반부를 중심으로 ‘결혼과 이혼’에 대한 사도바울의 권면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7장 후반부를 중심으로 ‘독신과 재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독신의 은사와 동기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듯이 세상에 지음 받은 남녀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첫 번째 계명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8)는 것입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대를 잇고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을 통해 후손을 잇는 것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소명이며 사명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독신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왔습니다. 

   하지만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독신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습니다. 독신이 긍정적일 수 있으며, 어떤 경우는 결혼보다 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 ‘처녀의 독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사도 바울은 26절 하반절에서, (독신으로)“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28절에서는‘장가가는 것, 시집가는 것’이 죄짓는 것은 아니지만 바울은 자신이‘아끼는 사람들’에게 독신으로 살기를 권한다고 합니다. 33절부터 34절에는 ‘시집, 장가간 사람들은 자신들의 배우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염려할 수밖에 없지만 독신을 선택한 사람들은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거룩하게 한다’고 합니다. 38절에는 독신에 대한 권면을 다음 같은 말로 맺습니다.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보내는 자도 잘 하거니와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니라.”

   독신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통념에 비추어 보면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꽤나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바울이 이렇듯 독신을 결혼보다 더 잘한 선택이라고 여기는 근저에는 26절에 기록된‘임박한 환란’, 29절의‘단축되어 진 때’, 31절의 ‘지나가 버릴 세상의 외형’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본문은 자세히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눈앞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로마제국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 좀 더 눈을 들어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나라를 대체할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하더라도 바울이 결혼을 부정하고 독신만을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모든 독신을 긍정하고 옹호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긍정하고 권하는 독신은 ‘은사’(카리스마)로서의 독신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로서의 독신을 말합니다. 바울은 결혼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복이듯이, 독신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은사일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 7~8절을 읽어봅시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 선물로서의 독신은 오늘날 비혼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의 동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오늘날 비혼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요인과 상황 때문입니다. 출산과 육아부담, 주거비용 부담, 경력단절, 자유로운 생활제약 등이 부담되어 독신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독신을 권하는 바울의 생각에도 본문 28절에 ‘육신의 고난’이라고 쓴 것 같은 상황적인 이유와 동기들도 일부 내포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독신을 권하는 보다 궁극적인 동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의 일’에 ‘몸과 영’(34절)을 드려 전력하기 위해서,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기’(35절)위해서입니다.

   이렇듯 주님이 주신 은사로서 또한 주님께 대한 보다 더 온전한 충성의 동기에서 선택한 독신은 얼마든지 긍정되어야 하고 격려되어야 합니다. 독신을 선택한 지체들이 마지못한 독신이 아닌 하나님의 은사,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독신으로 주를 더욱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과 내적인 거리

   고린도전서 7장 전반부에서 결혼한 부부의 성(性)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은 바울이 그 문제 뿐 아니라 결혼의 핵심에 대해 부가하여 기술했던 것처럼, 바울은 본문에서도 의뢰받은 미혼문제에만이 아닌, 좀 더 확대된 주제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것은 꼭 독신을 선택한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어느 정도 내적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9~30절을 읽어봅시다. 언 듯 읽어서는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다음 같은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세상에 있는 것들과 세상의 체제 안에서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29절에 ‘아내가 있는 자들’로 표현된 결혼제도, 30절에 ‘매매하는 자들’로 표현된 경제체제, 31절에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로 표현된 ‘물질소유’ 등입니다. 제도 자체로서 결혼, 경제체제, 물질소유 등은 선한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권력과 정치제도, 사회적 성취 등도 선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제도와 체제로 인해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고, 넉넉한 재화를 소유하게 되면‘기뻐’합니다. 반대로 그런 것들이 자신의 필요와 기대에 못 미치면‘실망하고 슬퍼’합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에게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하고, 때로는 절대 의존하여 그런 것들을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으로 삼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의 기대치에 이르면 그것이 전부인양 기고만장하여 교만하거나, 반대의 경우 실망을 넘어 생을 포기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 빠져들게 되면 결국 낭패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과 어느 정도 내적인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진정으로 고귀하고 절대적인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질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결코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나 도피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단축’(29절)되고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31절)이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 세상을 대체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방식에 맞추어 이 세상의 삶을 재조정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의 미래의 결과가 선명해졌습니다. 그렇게 분명한 미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해 오늘을 삽니다. 마지막이 분명히 시야에 있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한 걸음 더 다가서야 할 것과 한 걸음 물러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분별해 살아갑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자신의 것으로 알고 누리는 사람은 바울이 본문 30절,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삽니다. 고후6:10절 말씀같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세상을 삽니다. 그렇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과 어느 정도 내적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재혼의 자유와 제한

   마지막으로 재혼에 대해 바울이 어떻게 권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바울은 독신이 긍정적일 수 있으며, 어떤 경우는 결혼보다 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재혼의 경우에서도 여전히 견지합니다. 본문39~40절을 읽어봅시다. 

   바울은 40절, “내 뜻에는 그냥 지니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기록한 것같이 배후자와 사별했다면 가능하면 홀로지내는 것이 더욱 좋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의 근저에는 이미 앞에서 독신을 권장했을 때에 들었던 이유들이 깔려있습니다. 젊은 독신자들도, ‘임박한 환란(26절), 단축된 주의 재림의 때(29절), 사라질 세상의 외형(31절)’때문에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26절)라고 한다면, 하물며 배우자의 사별로 홀로 된 사람들은 좀 더 수월하게 그냥 지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주의 일’을 힘쓰므로‘주를 기쁘시게’(32절)하고, ‘마음의 갈라짐’(34절),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길 수’(35절) 있다고 권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혼의 필요가 절실할 경우는 재혼 할 수 있다고 바울을 말합니다(39절). 바울은 그리스도인도 재혼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분명한 조건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배우자의 사별로 인해서 홀로 된 사람이 재혼할 수 있고, 둘째는 재혼을 하더라도 ‘주 안에서만’ 즉 자신과 같이 주를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과만 재혼하라는 것입니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평생의 계약이고 배우자 중 한 쪽이 죽게 되면 그 결혼계약의 법적구속력이 무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재혼의 허용과 제한을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하는가? 라는 생각이 남습니다. 사별이 아닌 이혼한 상대와 재혼할 수 없는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상대와 재혼할 수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살펴본 것처럼 이 문제들에 대해 바리새인 같이 율법주의 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재혼에 대해 진지하고 충분한 기도와 숙고의 과정을 거쳤다면 허용되어야 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다짐과 각오 한 가지는 전제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아닌 상대가 ‘거룩하게 되고, 구원받게 되는’(14,16절)것을 위해 마땅한 대가를 치르겠다는 다짐과 각오입니다.  


   독신과 재혼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신과 재혼의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독신과 재혼에 대해 우리 모두는 세상시각으로 보고 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또한 사회적 통념에 따라 쉽게 판단하지 않고, 개별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독신, 재혼한 사람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운 사람들로 세워져야 합니다.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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