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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 성경본문 : 사도행전 9:32~43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10월 06일 2부예배

   지난주일 설교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은 예수를 믿으십니까? 어떤 예수를 믿으십니까?’라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예수를 믿으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아마도 많은 분들이‘구원받기 위해서, 예수 믿으면 영생 얻으니까,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 가니까!’라고 답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구원과 천국과 영생’만큼 소중한 것이 또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곰곰이 살펴보면 예수님은 구원과 천국과 영생에 대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꽤나 차이가 있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과 천국과 영생은‘죽어서 맞게 될 그 무엇’이 아니고‘지금 여기에서 누려야할 실체’이며, 단순히‘커트라인’을 통과하는 수준보다 훨씬‘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며 지속적인 문제’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스도로인해 여러분과 제 안에 일어나야 할 변화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복음은 치유하고 소생시킵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에서 복음을 전하며 행했던 놀라운 기적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룻다에 이르렀을 때에 애니아 라는 8년 된 중풍병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저하지 않고 애니아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34절)라고 선포했고, 애니아는 즉시로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가던 길을 진행해 욥바에 이르렀습니다. 욥바는 이스라엘 땅 서쪽, 지중해 해변가의 작은 도시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곳에 이르렀을 때에 유대식으로는 다비다 라고 하고, 헬라식으로는 도르가라 불렸던 병들어 죽은 여 제자의 주검과 마주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룻다의 애니아에게 행했던 것 같이 주저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40절)라고 선포했고 다비다는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앉았습니다. 

   본문은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는 ‘회복시키고 소생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5:13~16절,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성도는 어떤 고난과 질병, 절망적 상황 중에도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신뢰하며 신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경우와 같이 고난과 질병을 위해 기도할 때에 ‘즉시’ 회복되고 소생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회복은 더디고 소생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4:25~27절 말씀하신 것 같이 하나님은 비록 하나님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지닌 모든 고난, 모든 질병을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모두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에 달린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고난에 대한 회복과 병에 대한 치유는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치유와 회복에 대한 맛보기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결국 종국에 맞게 될 자신들의 모습과 운명을 미리보고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종국에 맞게 될 모습에 대해 요한계시록21:3~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완성될 여러분과 저의 종국의 실상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어떤 질병, 고난, 죽음 앞에서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신뢰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복음은 편견을 넘어서게 합니다!

   두 번째로 본문은 복음에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편견과 거기에서 기인한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모양의 경계와 구분을 짓습니다. 남녀의 성(性)에 대한 편견과 갈등, 인종적인 편견과 갈등, 사회적 신분에 대한 편견과 갈등, 정치적 입장에 대한 편견과 갈등, 지역 간의 갈등 등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복음에는 이렇듯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편견과 거기에서 발생되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사회적 구분과 편견과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두 가지 호칭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본문 36절의‘여 제자’이고 다른 하나는 43절에 나오는 ‘무두장이’입니다. 

   놀랍게도 본문은 다비다를 ‘여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를 통 털어 제자가 여성 형, 즉 ‘여 제자’로 쓰인 경우는 본문이 유일합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여자들은 업신여김을 당했습니다. 이방나라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유대적 사고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다비다가 ‘여 제자’였다고 기록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 공동체가 여자인 다비다도 남자들로 구성된 다른 제자들과 동일하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더 이상 여성을 열등한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사회적으로 격리하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기록한 베드로전서3:5,7절에서 여성들에 대해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회적 편견과 관련된 두 번째 호칭은 본문 43절에 나오는 ‘무두장이’입니다. 무두장이는 짐승의 가죽으로 피혁제품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본문 당시에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종교의식상 부정한 사람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시체와 깨끗하지 못한 동물들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무두장이는 천대받는 직업이었습니다. 만약 무두장이가 자신의 직업을 속이고 결혼을 했다면 그것은 이혼의 사유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도 베드로는 이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하루도 아니고 ‘여러 날’(43절) 머물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라 취급받았던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유하셨던 것(눅19:5-7)처럼 베드로 사도는 무두장이의 집에 머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으로 넘어서기 쉽지 않았던 당시의 편견의 장벽을 힘써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이렇듯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편견과 경계,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게 합니다. 신약성경 곳곳에서 복음이 무효화시킨 편견과 갈등과 분열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8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복음으로 이루어진 교회는 성(性), 인종, 사회적 신분과 계층, 소유의 정도, 정치적 견해 등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거나 가르지 않습니다.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에 매이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울타리를 가지고 ‘안과 밖’을 구분하고 차별하고 갈등하는 일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리에 있던지 중심에 있는 영원한 생명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일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을 동일한 시각으로 보고 그들도 중심을 향해 가도록 돕고 권유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모든 편견들을 넘어섭니다.   


복음은 삶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복음이 사람의 삶의 전 영역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 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단지 죽어서 천국 갈 수 있는 티켓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 다스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여기,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의 도르가, 다비다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 36절,“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이 말씀에 근거해 ‘제자’를 정의하자면 제자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여 제자, 도르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 하에서 다른 사람들, 특히 ‘과부들’을 힘써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르가의 선행과 구제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녀가 죽었을 때에 보인 사람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습니다. 본문 39절을 읽어봅시다.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도르가는 본문 당시의 사도들 같이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욥바라는 크지 않은 해변 마을에서 생활하는 한 여인에 불과했습니다. 바느질을 통해 생업을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 기자는 이 작고 보잘것 없는 여인이지만 자신의 삶의 전 영역을 통해 복음을 드러냈던 다비다의 이야기를 후대의 교회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진정한 복음은 삶의 전 영역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재물과 소유도 예외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다’라고 했던 것처럼 복음은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삶에서 재물의 청지기로 살아도록 구원합니다.

 
   구원(영생)은 죽은 후에 보험금을 받는 보험증서가 아닙니다. 마법의 면책특권도 아닙니다. 영생은, 요한복음17: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는 말씀 같이 영생(구원)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더 없이 풍성하고 기쁨 넘치는 교제입니다.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해가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 구원과 영생은 롬8:35,38~39절 말씀 같이 그 어떤 질병도 고난도 죽음조차도 중단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확신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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