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설교영상

설교영상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019.08.04멈출 수 없는 생명의 말씀

  • 성경본문 : 사도행전 5:17~42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8월 4일 2부예배


 ‘터진 봇물은 가래로도 못 막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같이 이 땅에 시작된 생명의 말씀의 역사는 그 무엇으로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저항과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깨끗해졌습니다. 그 생명의 말씀이 여전히 흐르고 또 흘러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 진행되어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모자이크 교회의 목사 라파엘 맥머너스는 다음같이 표현했습니다.“드넓은 미지의 바다는 고전이라는 나침반을 통해서만 항해할 수 있다. 당신이 시작한 여행은 당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 미래의 구조의 신비를 찾으려는 것이다. 운동이 시작된다. 칭호나 특권도 없이! 운동이 시작된다. 확률을 무시하고, 경외와 적절성을 결합하면서, 멈출 수 없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오직 하나님께만 응답하는 (생명의 말씀 운동이)!”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 ‘멈출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의 진격’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 또한 어떻게 거절과 핍박의 폭풍을 뚫고 생명의 말씀의 진격의 항해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팎의 폭풍

   아무 해도 받지 않고 안전하게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의도요 약속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움직임과 능력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바울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들 안에 꿈틀거리는 ‘생명의 말씀’의 행진을 가로막으려는 안팎의 폭풍을 마주해야했습니다. 

   본문의 예루살렘 교회 역시 그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역사가 사도들과 예루살렘교회를 통해 왕성하게 일어나자 이를 시기하고 방해하는 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7~18절을 읽어봅시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이들에 대한 핍박은 한두 번의 감금과 협박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을 재차 감금할 뿐 아니라 ‘채찍질’(40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바울은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고후11:23~25, 행14:19)에 맞아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는 외적인 핍박이 끔찍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적인 폭풍’이 결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역사를 굴복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외적 폭풍이 거세면 거셀수록 교회와 성도들은 더욱 견고해졌고, 더욱 정결하게 되었다는 것이 지난 교회의 역사가 보여주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교회 밖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완전히 잠재울 만한 능력을 가진 폭풍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침몰시킬 수 있는 유일한 폭풍이 있다면 그것은 ‘안으로부터 오는 폭풍’입니다. 교회가 ‘생명의 말씀’에 천착하지 않고, 세속화와 분열로 인해, 교회의 본질인 ‘말씀의 생명력과 거룩함과 하나 됨’을 상실함에서 오는 폭풍입니다. 본문 바로 앞에 기록된 것 같이 하나님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행위’를 충격적일 정도로 엄하게 다루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간의 문제를 엄격하게 다루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자신과 교회를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결코 외부에서 오는 핍박의 폭풍은 교회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폭풍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자신과 교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권력욕과 명예욕과 재물욕, 이것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 안의 크고 작은 갈등과 분열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진격을 가로막을 수 있는, 교회를 넘어뜨릴 수 있는 유일한 폭풍입니다.


생명의 말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복음을 대적하는 안팎의 방해와 박해가 있어도 ‘생명의 말씀’의 앞길을 가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열방과 족속들, 군왕들, 관리들이 모두 합세’(행4:25~27)한들 ‘생명의 말씀’의 진격을 가로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은 그 어떤 시기와 협박과 방해와 핍박도 넘어섭니다. 본문 19~21절이 이 사실을 보여줍니다. 

   대제사장과 함께한 사람들과 사두개인들의 당파가 합세하여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지만 하나님이 그의 천사를 통해 옥문을 여시고 끌어내셨습니다. 그리고는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유사한 사건들이 사도행전에 거듭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하나님은 세상이 ‘생명의 말씀’과 그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둘 수 없음을 놀라운 기적적 사건들을 통해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의 말씀이란 무엇을, 누구를 말합니까? 요한일서1:1~2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는 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 30~31절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 생명의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시고 구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그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습니다. 

   생명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생명의 말씀을 품은 성도들 또한 가둘 수 없었습니다. 본문 26~29절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루살렘 당국의 위협과 협박에 조금도 위축되거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 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어떤 위협과 핍박도 그들 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의 운동력을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마지못해서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갈라디아서6:14절,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는 말씀같이 성도들은 유일한 자랑은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고 여기고 선포하며 살았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 안에 ‘생명의 말씀’인 그리스도를 모셨는가? 그분이 내 삶의 중심에 계신가? 생명의 말씀인 그리스도를 방편삼아 나 자신의 원함을 도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히브리서4: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는 말씀같이 생명의 말씀이 내 존재와 삶의 중심을 통과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치도록 나 자신을 말씀 앞에 숨김없이 드러내는가? 나의 유일한 자랑은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뿐인가? 교회의 유일한 자랑은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인가? 

   이렇듯 생명의 말씀이 우리 존재의 중심을 통과해 갈 때에 비로소 생명의 말씀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멈출 수 없는 진격의 진리가 됩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런 생명의 말씀의 통로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능욕도 영광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성도들을 놀랍도록 담대함과 용기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자신들 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고 자랑할 뿐 아니고, 생명의 말씀을 드러냄을 통해서 올 수 있는 불이익과 고난과 능욕도 마다하지 않게 합니다. 

   본문 40~42절을 읽어봅시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본문의 베드로와 사도들 뿐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은 한 장 전체에 걸쳐 대담한 믿음으로 생명의 말씀의 통로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24~26,33~38절을 읽어봅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 하느니라”(38절) 라고 선언합니다. 또한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이런 사람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32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베드로 사도는 그가 기록한 베드로전서4:12~14절을 통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교회 밖에는 교회를 무너뜨릴 만한 능력을 가진 폭풍이 없습니다. 교회 밖에서 오는 핍박과 박해의 폭풍은 오히려 교회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깨끗하게 할 뿐입니다. 교회를 무너뜨릴만한 폭풍은 우리 안으로부터 오는 폭풍입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들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늘 분별’(히4:12)하는 것을 통해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풍을 잠재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생명의 말씀’은 우리를 통해 또 다시 ‘땅 끝’을 향해 진격해 갈 것입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사11:9)한 그날까지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격의 통로 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23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40 Next ›
/ 4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