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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우리 능력 아닌 예수님 은혜

  • 성경본문 : 사도행전 3:11~26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7월 7일 2부예배

   어거스틴은 인간을 정의하기를 ‘호모 인쿼바투스’ 즉 ‘자기 안으로 구부러진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기적 본성을 따라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며,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자기에게로만 구부러진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인생과 세상, 역사의 수원지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겨져 본질적 결핍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주변에 있는 유무형의 자원들을 긁어모아 자신의 안위를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자기에게로 구부러지면 구부러질수록 더욱더 단단한 소외와 깊은 불안과 두려움에 갇히게 되고, 결국 절망과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절망의 길에서 돌아설 수 있을까요? 이 거대한 ‘자기함몰’의 쓰나미를 멈추고, 사람을 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자신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실 뿐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이에 대해 본문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능력 아닌 예수님 은혜

   본문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드로 사도의 두 번째 설교입니다. 두 번째 설교 역시 첫 번째 설교(행2:14~39)만큼이나 풍성한 복음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베드로 사도는 2장에서는 성령강림 사건을 계기로, 본문에서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에 대한 치유 사건을 계기로 복음을 전합니다. 이렇듯 사도는 기회가 생기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람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사도행전의 후반부를 주도해 가는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해 평생 성전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며 살아왔던 사람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베드로와 요한의 선포로 걷게 되자,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에 있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모여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상황을 깨어 분별했습니다. 그리고는 1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 사도는 불구걸인이 회복된 것은 결코 자신들의 ‘권능과 경건’ 때문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그 사람을 완전하게 낫게 하였다고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작은 능력과 성취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큰 영광을 돌리려는, 자기 안으로 구부러지려는 본성을 돌이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는 본문 사건의 복사판 같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불구걸인이나, 사도행전14장에 등장하는 걷지 못했던 사람이 회복된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나 바울과 바나바의 선포같이 그들의 능력과 경건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때문입니다. 

   본문과 사도행전 14장에 등장하는 나면서 걷지 못했던 사람들이 걷게 된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치유와 회복은 여러분과 제가 죄와 사망에서 놓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경건과 능력이 아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님, 그분은 누구이신가?

   베드로는 첫 번째 설교 같이 두 번째 설교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풍성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선 본문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록된 순서대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종’(13,26절)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이’(14절)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15절)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분’(15절)입니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키시는 분’(16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실 종말의 ‘만물의 회복자’(20~21절)입니다. 예수님은 ‘모세 같은 선지자’(22절)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분’(24절)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씨’(25절)입니다. 이들을 세 가지로 요약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본문22~25절을 읽어봅시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았던 구약시대의 거봉들 셋을 언급하며 이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소개합니다. 그들은 ‘모세, 사무엘(다윗), 아브라함’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18:15절에 모세가 예언했던 바로 그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십니다(22~23절). 예수님은 사무엘하7:12~13절에 예언했던 바로 그 ‘다윗의 후손’(마21:9,22:42)입니다(24절). 예수님은 갈라디아서 3:16절,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 같이 종말에 땅 위의 모든 족속의 복의 통로가 될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25절). 이렇듯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자 완성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의 주(主)’이십니다. 본문13~15,18절을 읽어봅시다. 

   어떻게 예수님은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까?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은 ‘종’이 되시므로 ‘주’가 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설교의 시작(13절)과 마지막(26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종’으로 기록합니다. ‘수미상관’의 형식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13절과 26절에 기록된 ‘종’은 구약성경 이사야서52:13~53:12절에 기록된 ‘고난 받는 종’의 노래에서 온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13~15절 상반절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이사야53:2~10절에 나타난 ‘종의 고난과 죽음’과 일치하고, 본문 15절 하반절의 ‘예수님의 부활’은 이사야서52:13~15절에 나오는 ‘종의 영광’과 일치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종으로 죽으심으로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으로 죽으심으로 ‘생명의 주’가 되는 이 역설적인 진리가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복음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엡6:19,골1:26~27,2:2)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역사와 만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회복하시는 분입니다. 본문20~21절을 읽어봅시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역사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 구원의 완성은 단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본문 21절 말씀 같이 ‘만물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은 단지 미래에 이루어질 일 만이 아닙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생략되었지만 20절의 예수를 보내시는‘때’와 21절의 만물을 회복하시는‘때’모두‘복수’로 쓰였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미래의 한‘시점’만이 아니라 그 때까지의‘기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완성, 역사와 만물의 회복이 미래 어느 시점만이 아니고 예수를 ‘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과 저를 통해 역사와 만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회복하시는 분입니다. 

회개의 문 뒤에 펼쳐질 것들

   마지막으로 살펴 볼 것은 이렇듯 놀라우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은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당신은 이렇듯 놀라우신 하나님의 구원을 누릴 수 있습니까? 본문 19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호모 인쿼바투스’ 즉 ‘오직 자신에게로만 구부러졌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입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요,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삶의 방식에서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요,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의 전환’입니다. 사람들의 ‘경건과 능력’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은혜’가 자신과 세상을 회복한다는 ‘신뢰의 전환’입니다. 더 나아가 이 근거를 토대로 한 ‘삶의 전환’입니다. 지금까지 믿고 행동하던 방식을 버릴 것과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할 때만이 아니라 평생의 일입니다. 히브리서3:12~14절,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는 말씀 같이 ‘오늘’ 이라고 일컫는 동안에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서야 합니다.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섰다고 구원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거울을 통해 자기 얼굴에 묻은 오염을 보았다고 깨끗해지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가해자가 돌이킨다고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 없이 해 주심이 필요합니다. 감사한 것은 본문 19절 말씀 같이 하나님께로 진정으로 돌아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예외 없이 ‘죄 사함’, ‘죄 씻음’의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새롭게 되는 날’을 맞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새롭게 되는 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본문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새롭게 되는 날’은 ‘첫 창조의 날에 주어진 것들’, 즉 ‘첫 창조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능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육체’(고전15:43~44)뿐 아니라, ‘만물’ 또한 새로운 것(계21:5)으로 우리에게 이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 17절에서 이렇게 호소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동일한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회개하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십시오! 그리하면 예외 없이 죄 사함을 받을 것이고, 새롭게 되는 날이 생명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여러분에게 이르게 될 것입니다.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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