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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7우리 중 누가 큰 사람인가?

  • 성경본문 : 누가복음 22:24~30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4월 7일 2부예배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기독교계에서는 지난해에서부터 주목을 끄는 운동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입니다. 몇몇 교계 인사들이 주도하고 주목받는 행사가 아니라 조국교회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향해 돌이키는 실제적인 회개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조국교회가 돌이키고 회개해야 할 것은 신사참배만이 아닙니다. 조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되어온 것에 대한 진정한 돌이킴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반도에 복음이 전파될 때에 다양한 교단에서 파송된 서양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졌기에 여러 교단들이 있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세워진 교단들이 또 다시 갈등과 분열을 반복해왔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갈등과 분열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이유와 명분들이 있습니다만 그 이면에는 적잖은 ‘권력과 이권다툼’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누가 큰 사람인가?’하는 ‘권력다툼’의 문제가 거룩한 공교회에서도 벌어 질 수 있는 일임을 지나온 조국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 크냐? 하는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도 벌어졌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과의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본문 말씀이 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공교회 안에서까지 작동될 수 있는 세속권력의 실상과 이에 대비되는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세상 나라의 리더십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유월절의 의미에 더하여 자신이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종말의 유월절 어린양’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못해 충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한 듯합니다. 오히려 엉뚱한 일에 골몰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 중 누가 크냐?’(24절)는 다툼입니다.
  ‘누가 크냐?’는 문제는 이번만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9:44-46절에서 이 문제로 논란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이미 예수님은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크냐?’는 문제는 비단 예수님 제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도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을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야보고와 요한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20:21)라고 요청합니다. 이렇듯‘누가 크냐?’,‘위대함과 권력’에 대한 욕구는 많은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먼저 ‘세상 나라의 권세’가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본문 25절을 읽어봅시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병행을 이루는 마가복음10:42절은“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쓰인 동사‘주관하다’(퀴리우신)라는 말에는‘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권력을 휘두르며 강압적으로 통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세상 권력이 지향하는 바는 프랑스의 태양왕이라 불렸던, 파리 외곽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지은 루이 14세가 말한 ‘짐이 곧 국가다’라는 자리입니다. 이런 권력의 호사 뒷면에는 참담한 서민들의 고난이 널려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안타깝고 놀라게 되는 것은 공교회 안에서도 이런 세상 나라 권력이 작동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꼭 교회 안에 어떤 특별한 직분과 직위를 가진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정받기를 구하는 신앙생활 모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인정에 대한 욕구’와 ‘권력에 대한 욕구’는 실은 쌍둥이 형제지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우리 중 누가 더 큰가? ,누가 더 인정받는가?’ 에 골몰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 나라 리더십

 ‘세상 나라 권력 속성’에 대해 말씀 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하나님 나라의 권력의 속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본문 26-27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권력 의 속성이‘섬김’에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은‘다스림, 통치’에 대한‘세상 나라의 정의’와‘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서로 매우 두드러지게 대조되며 커다란 차이점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것은 섬기는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시기 전‘유언’과 같은‘마지막 가르침’입니다.

   그렇습니다.‘위대함’은 권력을 소유하거나 그 권력을 행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위대함이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고 또한 그들의 어려움에 동참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겸손히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은‘섬김의 리더십’의 실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마찬가지로 유대사회에서 어른들은 받들려졌으며, 하찮은 일은 젊은 사람들이 도맡곤 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풍습입니다. 어르신은 앉아서 먹고, 젊은 사람들이 섬기는 것은 본문 당시에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큰 자’는‘젊은 자’와 같아야 하고 ‘다스리는 자’는‘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나는 섬기는 자로서 너희 중에 있노라!”(27절) 

   이렇듯 하나님 나라에서의 통치는 세상나라의 통치 방식과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10:45) 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한 가지 확인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다!’ 라고 하니 우리 모두가 걸레 들고 화장실 청소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리더십은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설교를 통해, 어떤 사람은 말씀가르침을 통해, 어떤 사람은 행정을 통해, 어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어떤 사람은 식사봉사를 통해, 어떤 사람은 차량안내를 통해, 어떤 사람은 음악을 통해, 어떤 이들은 청소를 통해, 어떤 이들은 미화를 통해..., 중요한 것은 리더십의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예수님이 나를 섬기셨듯이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섬김을 통해 사람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섬김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진정한 위대함을 실현하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 리더들  

   제자들을 언짢게 바라볼 수 있는 상황임에도‘섬김의 리더십’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시며 ‘하나님 나라 리더십’으로 초대하십니다. 본문 28절-30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이제까지 시련을 겪어오는 동안 제자들이 계속해서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어 주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은 시험, 시련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를 열거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이 받으신 마태복음 4장에 기록된 3가지 시험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이제 막 시작하신 예수님을 마귀가 시험합니다. 제일 먼저는 40일을 주리신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능력과 힘’에 대한 시험입니다. 요한복음1: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는 말씀 같이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어찌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할 수 없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 ‘힘과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주리고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자신의 욕구와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용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 자기의 소원이 아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마26:39,42).

   두 번째 시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 내리라’(마4:5-6)고 합니다. 사자들을 보내어 떨어지는 당신을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시험합니다. 만일 그런 ‘기적’을 행하신다면 예수님은 단번에 사람들에게 놀라운 존재로 인정되고 추종 받을 것입니다. 단번에 그의 명성은 유대 전역에 알려질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간단히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4:7)라고 거절합니다. ‘거룩한 성전’은 하나님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 시험은 마귀가‘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만일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줄 것’(마4:8)이라고 유혹합니다.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라!’ 하라고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만 있다면“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깁니다”(롬1:25)‘경배의 대상’과‘소유의 대상’을 맞바꾸는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간단히‘천하만국’에 대한‘소유와 그 영광’을 내려놓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이 시험은 곧 주님을 따라 길을 가는 제자들,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시험이기도합니다(28절). 사탄과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힘을 가지고 능력을 갖추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그 능력을 네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위해 행사하라고 합니다. 사탄과 세상은 놀랄만한 일로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인정받고 박수 받으라고 합니다. 그것이 비록‘거룩한 성전’,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일지라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사탄과 세상은 뭐니 뭐니 해도‘소유와 소비’가 최고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서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28절)이 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시험과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모든 시험에 항상 함께 하였고 물러서지 않은 사람들,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맡겨 다스리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29-30절) 



   여러분과 저도 예수님의 칭찬처럼 예수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함께 한 자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네 욕심과 욕망을 채워라!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성전이면 어떠냐! 네 자신이 영웅이 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소유하라, 소비하라!는 사탄의 시험을 간단히 물리치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리더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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