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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4나무들을 보고 깨달으라!

  • 성경본문 : 누가복음 눅21:29~36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3월 24일 2부예배

   지난 월요일 이영순 권사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문상차 전남 구례를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인근에 있는 산동마을 산수유 축제를 꼭 들려서 가시라는 유족들의 말씀에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하위마을’부터 꽃핀 산수유는 ‘상위마을’까지 계곡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아직 실감나지 않는 봄 정취가 이미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이 땅의 산수유나무는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입니다. 반면 이스라엘 땅의 봄소식은 무화과나무가 알립니다. 꽃을 볼 수 없는 무화과나무는 싹으로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본 사람은 자연스럽게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게 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생태를 통해 ‘하나님 나라’와 ‘종말’이 가까이 온 것을 말씀하시고, 이 때에 하나님 사람들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무들을 보고 깨달으라!

   먼저는 무화과나무의 생태에 대한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와 종말이 가까운 것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간단하고 평범해 보이는 비유지만 하나님 나라와 종말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소재로 합니다. 하지만 그 비유들과 가르침에는 시대를 관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깨달아야만 할 결정적인 진리들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 지금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가장 탁월한 책을 쓴 요하킴 예레미아스는 그의 책 마지막 결론부에서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그 자신과 그의 사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을 청중에게 요구한다. 예수님의 모든 비유들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막4:11) 즉 ‘실현되고 있는 종말론’이 그 중심에서 울려나온다.”고 했습니다.   본문의 비유를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종말에 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종말은 움 튼 무화과나무 싹 같이 이미 ‘싹이 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 무화과 열매를 볼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와 종말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싹’이 난 무화과나무는 ‘곧 여름’을 맞게 될 것이고, ‘곧 열매’ 맺고 ‘곧 수확’을 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와 ‘종말’도 결국은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대로 완성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세대’(32절)는 이미 이루어져 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와 종말에 대해 무지하고 교만하여 대비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16:2-3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는 말씀같이 ‘하룻날’ 같은 세상 이치에 대해서는 민첩하고 사력을 다하는데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교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은 분명합니다. 본문 32-33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본문에서 말하는 종말은 일차적으로는 AD70년에 있을 로마제국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이 ‘예루살렘의 멸망’은 ‘세상의 종말’의 모형입니다. 세상 종말은 예루살렘을 멸망으로 이끄는 사건들과 더불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무화과나무의 생태, 이 봄에 산수유나무의 변화를 통해서도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민감함과 분별의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이들의 생태 뿐 아니라 우리들 안에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차리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시다.  



생활의 염려를 경계하라!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종말’과 ‘완성되어 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제자들의 삶의 자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대비책을 말씀하십니다. 본문 34절을 읽어봅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먼저는 ‘방탕함과 술취함’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방탕함과 술 취함’은 시대를 뛰어넘어 ‘이 세대’의 최종목적지입니다. 오늘만이 아닙니다. 누가복음17:26-29절을 읽어봅시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사고팔고!’ 순화된 표현들을 사용했지만 내용은 본문에서 말하는 ‘방탕함과 술 취함’을 말합니다. 오늘만이 아니고 노아 때도, 롯의 때도, 로마서(롬1:21-32)가 기록된 1세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하지 않은 사람이 머무는 그 어느 때도 사람이 추구하는 것과 결과는 동일합니다. 

   최근 두세 주간 동안 계속해서 매스컴의 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슈가 무엇입니까? '유명 연예인, 언론사 사주, 전직 검찰 고위간부'의 탈선과 범죄에 관한 것입니다. 뉴스로 듣고 보기조차 낯 뜨겁고 불쾌하고 화가 나는 사건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정도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천박한 자본과 인기, 권력의 최종 행선지가 어디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력과 돈, 인기는 그것을 제대로 다룰 만한 자질을 갖추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지면 오히려 그것들이 본인만이 아니고 주변 사람들을 고통과 절망에 빠뜨립니다. 

   사건의 당사자들은 그렇다 치고,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들을 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또 무엇입니까? CNN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한국 사회의 관음증 문화에 대해 특집보도를 할 정도입니다. 빈센트 펠리티 박사는 ‘중독의 힘’을 명쾌하게 설명했습니다. 중독은 “만족 ‘직전까지만’가게 해 주는 것으로 아무리해도 모자란다.” 모든 종류의 쾌락, 그것이 술이 주는 것이든, 성이든, 돈이든, 인기든, 권력이든 한계를 모릅니다. 그래서 그칠 줄 모릅니다. 스스로 멈추지 않으면 정도를 더 해가다가 결국 그것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벧전4:4)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방탕함과 술 취함’이 불신앙의 발로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에 이의를 제기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어서‘생활의 염려’또한 앞에서 열거한 것들과 동일선상에 놓이는 불신앙의 결과라고 말씀합니다. 지나친 생활에 대한 염려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생활의 염려’에 매어 있는 사람들 또한 ‘방탕함으로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주님의 재림과 종말을‘뜻밖에 덫’과 같이 맞게 된다(34절 하반절)는 사실입니다. 실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염려는 무익합니다. 아무리 염려해도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습니다(마6:27). 

   생활의 염려와 근심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삽시다. 주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이 있어야 할 것을 이미 하늘 아버지께서는 아신다(마6:32-3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과 그렇게 말씀ㄴ하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합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종말을 맞는 하나님 사람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항상 기도로 깨어있으라!

  ‘완성되어 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와 ‘종말’에 대해 제자들에게 먼저 부정적이며 소극적 측면에서의 대비책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번에는 긍정적 측면의 대피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본문 36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와 종말을 대비해 사는 적극적인 측면에서의 대비책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입니다. 

   본문만이 아니고 성경은 곳곳에서 ‘항상 기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고 말씀합니다. 항상 기도가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가능하니까 여러 번 말씀한 것입니다. ‘항상 기도’는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매일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상황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삶의 ‘큰 변곡점’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사람됨의 한계를 자각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듭니다. 실직, 이혼, 사고, 암 진단 등과 같은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아니면 반대로 결혼, 출산, 목적성취로 인한 기쁨과 감사 등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듭니다. 그런가 하면 외적인 상황에 아무런 변화도 없고 경험이 극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면 안에서의 생각과 감정그리고 느낌이 변화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 모든 변화의 변곡점들은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사람은 그 하나님과의 친밀한 동행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 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다(히11:6)고 하는 하나님의 초대이며 깨움입니다. 죄는 영적 수면제와 같습니다. 사람은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인해 마음이 둔하여지고 결국 영적 수면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영적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삶의 모든 변곡점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항상 기도’입니다. 

   고린도후서4:6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는 말씀과 에베소서5:14절,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라는 말씀같이 ‘깨어나는 것’은 ‘성취’가 아닌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우리를 잠에서 깨울 뿐 아니라, 우리가 깨어난 상태를 유지하도록 비추어줍니다. 주님께서 빛 비춰주시므로, 주님께서 깨워주심으로 우리는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36절)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해야 합니다. 온 세상에서 우리가 절대 깨울 수 없는 한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주님께서 순간마다 깨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이미 싹이 난 무화과나무가 곧 여름을 맞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방탕함과 술취함’을 내버리십시오! 그 뿐 아니라 ‘생활의 염려’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삶의 변곡점마다 그 자리에 주님이 동행하고 계심을 의식하고, 그 상황 가운데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항상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다가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벧후3:11-14) 가운데 나타나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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