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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종의 법에 따라 죽으신 예수(

  • 성경본문 : 출애굽기21:26~32
  • 설교자 : 이창환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2월 24일 2부예배

   예수님께서 종으로 오셔서 종으로 죽으신 것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어째서 예수님이 종이 되어야만 했을까요?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고 따라오게 하려고 종이 되셨을까요?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만 꼭 종이 되어야만 섬김을 가르치거나 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종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반드시 종으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종의 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종이 되셔야만 했던 이유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을 살펴보겠습니다. 


동해보복법과 십자가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의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유일한 방법인 까닭은 구약 율법의 동해보복법 때문입니다. 동해보복법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생명에는 생명으로 갚는 법을 말합니다. 신체적인 상해가 발생했을 때에 동일한 상해로 갚아주는 법입니다. 동해보복법은 고대 바벨론의 함무라비 법전이나, 로마의 12표법에도 등장합니다. 고대 사회는 상해를 입힌 가해자에게 그대로 되갚아주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구약 율법의 원칙도 이와 동일합니다. 출21:23-25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구약성경은 대가 없는 용서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죄에는 동일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동해보복은 정의입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롭지 못하거나 공의롭지 못한 일을 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범죄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정의에 따라 죄값을 지불해야합니다. 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로마서 6장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죄의 대가를 찾으십니다.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동해보복법이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급격히 변화됩니다. 동해보복법의 원리에 따라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자기 생명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정의를 충족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으로 갚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아무렇게나 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가 흘려야할 피를 대신 예수님이 흘렸고, 우리의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의 대가를 자기에게 전가시키시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대가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동해보복법을 한 차원 높은 차원의 법으로 새롭게 재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입니다. 인간이 치러야할 대가를 예수님께서 대신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었던 대가는 모두 지불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논리적인 문제가 남게 됩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악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용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억울한 분이 생겼습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인간을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가롯유다도, 대제사장도, 빌라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죽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어떻게 치를 수 있습니까? 죽음은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습니다. 동해보복법에 따르면 우리는 다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종이 되셨습니다. 


종에 관한 법

   종에 대한 법은 자유민과는 다릅니다. 종은 자유민과 다르게 법적인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고대사회에서 종의 신분은 주인의 재산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출21장을 보면 종에게는 동해보복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21:20-21‘사람이 매로 그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에 죽으면 반드시 형벌을 받으려니와 그가 하루나 이틀을 연명하면 형벌을 면하리니 그는 상전의 재산임이라’ 동해보복법을 적용하면 종을 죽인 상전은 당연히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종을 매로 쳐서 즉사한 경우에는 형벌을 당하고, 하루 이틀 연명하다 죽으면 아무런 형벌도 받지 않습니다. 이유는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종을 죽인 경우 받는 형벌은 사형이 아닙니다. 종을 죽였다고 죽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을 죽인 것은 그 죽음으로 인한 주인의 금전적 손해로 대신합니다. 동해보복법이 종에게는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일한 원리에 따라 주인이 종에게 신체적인 상해를 입혔을 경우에도 동해보복법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26-27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 것이며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지니라” 종의 신체에 상해를 입혔을 경우 그 대가로 종을 풀어주면 됩니다. 이것은 동해보복법의 원리에 위배됩니다. 종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종에 관해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가 종을 받아서 죽였을 때입니다. 소가 사람을 죽이면 소의 주인은 형벌을 면했습니다. 그런데 소가 평소에도 들이받는 버릇이 있어서 주인이 사람들로부터 소를 잘 관리하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면, 주인의 고의성이 인정되어서, 살인으로 간주되어 소 주인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소가 종을 죽였을 경우입니다. 소가 종을 받아 죽인 경우, 주인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은 삼십 세겔을 지불하면 끝이었습니다. 은 삼십 세겔은 당시 종의 몸값이었습니다. 종을 죽인 경우 몸값만 지불하면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죽인 것과 종을 죽인 것은 그 처벌의 수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했지만, 종을 죽인 자는 대가를 지불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종을 죽인 사람은 값을 주고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종이 되신 예수님

   마태복음 26장에 따르면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대제사장들에게 은 삼십 세겔을 받고 팔아 넘겼습니다. 은 삼십입니다. 성경에서 은 삼십은 언제나 종의 값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종으로 팔렸습니다. 제자의 손에 의해 대제사장들에게 팔아 넘겨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종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타의에 의해서 종으로 죽으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종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종이 되셨고, 종으로 죽으셨습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자기 자신이 섬기러 왔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종으로 왔다고 분명하게 인식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을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러 왔다고 인식하십니다. 예수님은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대속물로 죽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종으로 오셨고, 종으로 죽으시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는 종의법이 적용되어집니다. 오늘 본문 출21장의 율법에 따르면 종을 죽인 자는 그 대가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은 삼십 세겔만 주인에게 바치면 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종으로 죽으셨기 때문에 종에 관한 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우리는 종을 죽였기 때문에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외치 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자기 죽음의 의미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요청하십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죽음의 대가를 갚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값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값없이 주시고자 종이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 종이 되신 이유입니다. 


새로운 법 사랑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인 동해보복법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셨습니다. 마5:38-39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예수님은 동해보복법을 뛰어넘는 은혜의 법을 제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법은 사랑의 법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지 말고 오른 뺨을 맞거든 왼 뺨을 돌려 대라고 하십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으로 복수의 사슬을 끊어내셨습니다. 더 이상 죽음을 죽음으로 갚는 피의 복수를 끝내고 자기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의 법 앞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른편 뺨을 맞고도 왼편을 돌려 대야하는 까닭은 이미 우리가 그만한 대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기 죽음의 대가를 우리에게서 받아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값없이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랑의 법에 의해 살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그 법에 순종하며 살아야합니다. 값없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며, 전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6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 것이며
27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지니라
28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 쳐서 죽일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
29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말미암아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
30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부과하면 무릇 그 명령한 것을 생명의 대가로 낼 것이요
31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법규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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