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설교영상

설교영상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019.02.10부활, 새 창조의 시작과 절정

  • 성경본문 : 누가복음 20:27~40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2월 10일 2부예배

   부활을 믿으십니까? 어떤 부활을 믿으십니까? 만일 그리스도인이 부활을 믿을 수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기독교 진리의 대들보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나머지 모든 기독교 진리는 잡다한 파편으로 전락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부활이 없다면’,‘그리스도도, 믿음도 헛것’이요,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가장 불쌍한 사람’(고전15:13-19)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본문의 사두개인들은 ‘합리적 사고방식’에 근거해 부활을 부인하는 현대인들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과 성경은 부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어떤 부활을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부활은 있을 수 없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과 함께 유대교를 이루고 있는 두 주류 중 하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다윗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 가문’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사제직을 독점하고 유대의 최고 정치기구인 산헤드린을 장악해 권력과 부를 쥔 귀족이었습니다. 이들은 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인 모세오경만을 신뢰하였으며 미래의 삶에 대한 교리는 무엇이든 부인했습니다. 이들은 철두철미하게 세속적이었으며, 특히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부인했는데, 이유는 부활 같은 급진적인 믿음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본문 27절은‘부활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부활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순수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고 자신들의 주장을 공고히 하기위한 의도에서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은 있을 수 없다’라는 주장을 모세오경의 말씀에 근거해 펼쳤습니다(28절). 그들이 내세운 모세오경은 신명기25:5절이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라는 말씀으로 일명 ‘수혼법’(계대혼인법)이라고 불립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칠형제 중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었고, 둘째와 셋째, 이후의 모든 동생들이 율법 규례를 따라 형수를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일곱 형제 모두가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이 여인은 어느 형제의 아내가 될 것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29-33절). 여러분은 어느 형제의 아내가 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 없는 딜레마를 통해 부활에 대한 소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 사두개인들은 ‘합리적 사고방식’이라는 무기로 부활을 지워보려고 합니다. 

   사두개인들과 그들의 주장은 ‘대중의 상식’에 호소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 주장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두개인들의 시각과 유사한 이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에 부활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로 여겨집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어떻게 부활 할 수 있겠는가? 부활은 단지 신앙인들의 자기기대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두 세상의 체제와 질서 

   사두개인들의 주장과 논리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본문 34-36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이 세상’(34절)과는 다른 ‘저 세상’(35절)이 도래 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와는 다른 ‘오는 세대’가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저 세상’에서 일어날 일이 다를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을 통해 유지됩니다. 하지만 부활 후 ‘저 세상’에는 더 이상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부활 이후의 새로운 삶의 체계와 질서 안에서는 결혼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부활한 다음에는 더 이상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두개인이 ‘이 세상’의 시각에서는 중요한, ‘그 여인은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라는 질문은 ‘저 세상’에서는 제기의 필요조차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체제 안에서 형성된 ‘부모와 자녀’, ‘부부’의 질서는 ‘저 세상’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 이후 ‘저 세상’ 의 체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천사들과 동등’한 ‘부활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36절)로서만 존재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 사두개인들이 단단히 붙들고 있는 모세오경 말씀을 근거로 제시하십니다. 37절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 이사야서26:19절 말씀이나 다니엘서12:2,13절 같이 부활에 대해 분명히 말하는 선지서의 말씀들로 사두개인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외의 ‘선지서’같은 다른 성경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생명같이 여기는 모세오경 중 출애굽기3:6절 말씀을 인용하여 부활에 대해 논증하십니다.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칭하셨습니다(37절). 그리고는 38절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가리켜 ‘죽은 자’들이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만약 이들 족장들의 운명이 죽음으로 끝이 났다면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들 족장들과 결부시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논리대로 ‘부활’이 없다면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은 ‘헛것’(고전15:14,17)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불러봐야 ‘죽음으로 끝날 인생들의 하나님’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선언 하십니다. 여전히 사두개인들을 포함해 유대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 족장들이 죽음으로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여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이며, 결국 이들 족장들은 ‘부활’이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입으로 부른 대로 실재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부활’은 ‘저 세상’ 체제의 생명과 질서입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고 경험되는 ‘이 세상’의 체제와 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제의 생명과 질서입니다. ‘이 세상’의 ‘합리적 사고방식’과 ‘대중의 상식’과는 일치하지 않다 하더라도 부활은 사실이며 실재입니다. 섣불리 좁은 내 이성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부활은 있을 수 없다’로 단정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저 세상’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35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새 창조의 시작과 절정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기에 부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관련된 성경 말씀 몇 곳을 통해 부활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부활’을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사건 몇 가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베다니의 나사로 등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부활’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긴 했습니다만 한 결 같이 또 죽었습니다. 부활은 단지 ‘이 몸이 소생하는 것’ 이상입니다. 

   그러면 부활은 무엇입니까? ‘부활은 새 창조의 시작이며 절정’입니다. 부활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는 ‘첫 창조’에 대비되는 ‘새 창조’의 시작과 절정입니다. 히브리서1:2절,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는 말씀같이 부활은 ‘마지막 창조’의 시작과 절정입니다. 
   부활은 분명히 이 몸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 몸의 단순한 소생이 아니라 ‘새 창조’의 ‘저 세상’에 합당한 몸의 변화와 혁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15:37-44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선언같이 새 창조,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15:20절 말씀같이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고전15:20)이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새 창조로서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22-23절을 읽어봅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할 것입니다.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비록 여러분과 제가 ‘땅에 속한 형체’로서의 한계 때문에 ‘약하고, 늙고, 병들고 결국 죽고 썩는다’ 할지라도 결국 새 창조의 첫 열매요 머릿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 ‘하늘에 속한 형체’로서 ‘강하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 약한 몸은 저 강한 몸이 될 것이고, 이 비천한 삶은 저 존귀한 삶이 될 것입니다.  



   본문 38절,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적 말씀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면 삶은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죽은 자의 하나님’을 믿는 한 결국은 달라질게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저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부활하신, 새 창조의 첫 열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로마서6:5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는 말씀같이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할 것입니다. ‘저 세상’  ‘하늘에 속한 형상’, 부활의 몸을 입을 때까지 소망과 능력으로 남은 세상을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39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 40 Next ›
/ 4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