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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성경본문 : 누가복음 20:19~26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2월 3일 2부예배


   근년에 우리가 종교와 국가 간의 관계설정을 생각해 보게 하는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하나는 ‘종교인 과세’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신념에 의한 징병 거부’입니다. 이 제도들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보완되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조세와 징병’, 그로 말미암는‘공정한 경제활동과 평화확보’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은 권한과 책임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두 문제 가운데  하나인, 조세 문제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기 위해 유대 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에 의한 조세에 대한 질문과 이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답이 극히 간단하여 조세와 국가와 권력에 관한 충분한 가르침을 얻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본문과 함께 성경 다른 곳에 기록된 말씀들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조세’ 문제를 포함해, 국가와 권력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여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본문 바로 앞에 기록된 예수님의 ‘포도원의 비유’ 말씀을 듣기가 불편했던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말을 책잡아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 넘기려 정탐꾼들’을 예수님에게 보냈습니다. ‘의인’인 체 가장한 정탐꾼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기 위해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22절)라고 질문을 합니다. 정탐꾼들의 질문은 ‘양자택일’의 답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정탐꾼들의 의도대로 어느 한 쪽이든 예수님의 선택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다!’라고 하면 유대인들은 격노하게 될 것입니다. 이유는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의 예속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 경우도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면 이것은 로마 제국에 대한 ‘조세거부’를 주장하는 일이요, 예수님은 로마의 ‘반역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탐꾼들의 ‘간계’를 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가지고 있는 로마 동전, ‘데나리온’ 하나를 보여 달라고 하십니다. 동전을 받아 들고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이 동전에 “누구의 형상과 글이 있느냐?” 데나리온의 한 면에는 당시 로마를 통치하던 황제 ‘디베료 가이사 아구스도’의 두상이, 반대 면에는 ‘디베료 가이사 아구스도, 신성한 아구스도의 아들, 대제사장’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25절,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쳐야 할 것과 또한 동시에 하나님을 높여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정부의 권세를 인정하고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감당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속 정부라 할지라도 그들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만 아니고 성경은 지속적으로 세상권력이라 할지라도 ‘악행을 징벌’하고 ‘선행을 포상’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와 수단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고 기록합니다.   

   로마서13:1-7절과 베드로전서2:13-17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이 국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국가권력과 제도가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요, 세우신 권세자들은‘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통치와 제도에 복종해야합니다.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문제는 국가와 제도, 권세자들이 본래의 의도대로 언제나 작동되거나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경험해 왔듯이 종종 역사 속에는 본래 주어진 권한과 책무와는 다르게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탐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악을 도모’하고 ‘선을 짓밟는 경우’가 있어 왔습니다. 이런 경우도 무조건적으로 국가권력과 권세들 인정하고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그 보다 먼저 살펴 볼 것은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권력은 쉽게 썩습니다. 이 문제에 관련해 어떤 권력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뿐 아니라 종교권력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본문19-20절을 읽어봅시다.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22:16절도 일어봅시다. 이 말씀에 의하면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과 목적,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평소에는 서기관과 대제사장 같은 유대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의 총독과 그 세력들과는 갈등과 대립관계입니다. 헤롯과 그의 당원들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하는 일에는 대동단결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총독, 헤롯 당원들’ 같은 ‘정치권력’만이 아니고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 같은 ‘종교권력’ 역시 부패하고 타락했음을 보여줍니다. 종교권력이 세상권력과 결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국가권력과 권세들은 순기능으로의 권한과 책무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대로 악을 도모하는 본산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국가와 권력은 언제라도 부패하고 타락할 개연성에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위와 같은 부패하고 타락한 국가권력과 권세들에게 무조건 복종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타락한 권력에 대해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8:15절과 누가복음13:31-32절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정치권력의 핵심인 헤롯 왕과 종교권력의 중심인 바리새인의 부패상을 ‘저 여우’와 ‘누룩’이라고 표현하시며 주의하고 경계 할 것을 말씀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어떤 정부와 정권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세상 나라와 권세는 예외 없이 한계를 지니고 부패하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국가와 권력도 ‘최선’일 수 없습니다. 그저 ‘차선’일 뿐입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해야 할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으로 어느 정부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에 대해 반기를 들어야 할까요? 쉽지 않은 선택과 결정입니다.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인은 모든 세상 권력을 하나님 말씀의 원리와 가치의 거울로 비추어 보아, 어긋 났다고 여겨지면 정당한 방식으로 비판하고 바로 잡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바로잡는 방식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유대교 열심당원들의 폭력방식의 정치적 불복종이나 봉기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지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유발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도 폭력적 방식으로 악을 제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시는 방식으로 죄와 악을 제거하십니다. 로마서12:17-19절 말씀 같이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은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신뢰하며 비통함을 지닌 비폭력의 행진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에 맞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의를 구하라!

  마지막으로 살펴 볼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와 권력, 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을 읽어봅시다. 아첨하고 회유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본문 21절에서 정탐꾼들이 예수님을 향해 한 말은 모두 옳았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경험하는 거짓된 세상 왕들과는 다르게 바로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종종 만나게 되는 자기 진영만을 편드는 세상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사람을 외적인 조건과 상황을 근거로 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정남불’, ‘내가 하면 정의, 남이 하면 불의’식의 거짓 정의와는 다르게 언제나 진리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고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드러내시고자 하는 ‘진리’, ‘하나님의 도’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主),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드러내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義)는 무엇입니까?(마6:33) 그것은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체다카와 미쉬파트’입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시89:14,97:2)는 말씀 같이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통치의 원리며 동시에 목표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창18:19절 말씀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또한 ‘체다카와 미쉬파트’는 역대하9:8절 말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 더 나아가 세상나라의 모든 왕들을 세우신 목적입니다. ‘정의 공의’는 세상의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열매’요 ‘임대료’(사5:7, 눅20:9-16)인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 ‘체다카와 미쉬파트’에는 여러 의미들이 들어 있습니다. 한 단어에 여러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히브리 언어의 특징입니다. ‘체다카’는 보통 우리말로는 ‘의’(義)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유교 가치관이 몸에 밴 우리는 ‘의(義)’하면 ‘도덕윤리, 법적으로 올바름’을 떠올리는데, 성경이 말하는 의에는 그것보다 더 앞선 요구가 들어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의’(義)의 시작은‘마음을 같이 함’입니다. 법적의미 이전에 관계적 용어입니다. ‘의’라는 말이 가장 최초로 등장하는 창세기15:6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자기의 마음을 같이 한 것을 두고 성경은 ‘의’라고 말합니다. 이 ‘마음을 같이함’이 기초가 되어 ‘법, 제도’가 만들어지고 그 법과 제도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시행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義)입니다. 이 원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법적 규칙의 다툼 이전에 하나님 나라의 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마음의 헤아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하나님 나라의 의(義), 공의와 정의로 가득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국가와 정권, 제도와 법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이며,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의 일꾼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와 권세자들이 쉽게 부패하고 타락할 연약함과 개연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법과 제도 적용 이전에 사람들의 형편을 헤아리고 마음을 함께하는 나라와 지도자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 ‘하나님 주신 동산’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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