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설교영상

설교영상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019.01.27머릿돌 된 건축자들이 버린 돌

  • 성경본문 : 누가복음 20:9~18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9년 1월 27일 2부예배

  ‘젠트리피케이션’,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소상공인에게 있어서 치솟는 임대료는 감당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임차인이 억지로 임대인에게 손해와 고통을 안기는 경우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유사한 상황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타국에서 장기간 머물게 되어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임대료를 받기로 약속했습니다. 때가 되어 임대료를 받기 위해 종을 보내었는데 농부들은 임대료를 지불하지도 않을 뿐더러, 보낸 종들을 몹시 때리고 거저 돌려보냈습니다. 주인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내하며 다른 종을 두 번이나 거듭해 보냈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의 완악함은 정도를 더해갔습니다. 급기야 주인은 아들을 보냈습니다. 아들을 보내 선의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주인의 기대와는 다르게 농부들은 상속자인 아들을 죽이고 아예 포도원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려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어떤 진리를 전하려 하시는 것일까요?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본문 예수님의 비유는 전체적으로 ‘포도원의 노래’라고 불리는 이사야5장1-7절의 비유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던 당시 사람들은 단번에 이사야서의 ‘포도원의 노래’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노래’는 본문의 예수님의 비유의 배경이 되며 동시에 교훈과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이사야 5:1-7절을 읽어봅시다.

   이사야서의 포도원의 노래와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첫 번째는 포도원 주인의 배려와 기대와는 상반되게 포도원과 농부들 모두 주인의 뜻을 크게 거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수님의 비유에 의하면 임차인인 농부들은 임대인과의 약속을 어기는 정도가 아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임대인의 포도원을 강탈하고자 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추수 때가 되어 약정한 소출을 받기 위해 한 종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임대인이 보낸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10절)돌려보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재차 종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몹시 때렸’을 뿐 아니고 ‘능욕’(11절)하고 거저 돌려보냈습니다. 주인이 세 번째로 종을 보냈으나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은 본문 비유의 주인이 연속해서 종들을 보내서 포도원 주인의 뜻을 알려주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렘7:25-26). 하지만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지자들을 때리고 가두었습니다. 

   급기야 주인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주인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표현과 ‘이는 상속자니 죽이자’라는 농부들의 말을 통해 주인에게 아들이 오직 한명 뿐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는 존대하리라!”(13절)라는 기대로 아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농부들은 유일한 상속자 아들을 죽여‘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14절)라고 결의했습니다. 그리고는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끌고 나가 죽였습니다. 임차인 농부들은 ‘점유로 인한 부동산 소유권리’를 이용해 포도원을 강탈하려 한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 당시의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인생과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이기도 합니다. 시편24:1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로마서11: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는 말씀과 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권리는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합니다.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14:7-8절의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누리고 사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주어진 생명까지 하나님 것입니다. 

농부들이 지불해야 할 임대료

   포도원을 임차한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에게 지불해야 할 것은 정당한 임대료입니다. 본문 10절에 의하면 포도원 주인과 농부들은 매년 나는 ‘포도 소출’로 임대료를 지불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 비유의 농부들이 주인에게 지불해야 할 임대료와 같이 하나님 백성들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지불해야 할 임대료는 무엇입니까? 

   본문 비유의 배경이 되고 있는 이사야5:7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포도원 농부들인 하나님 백성이 주인이신 하나님께 지불해야 할 임대료는 ‘정의’와 ‘공의’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구약성경이 쓰인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와 ‘체타크’인데 번역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는 여러 단어들로 번역되었습니다. 대략 설명하자면 ‘미쉬파트’(정의)는 ‘법적인 측면에서의 의(義)’와 관련된 용어로 ‘법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을 뜻하고, ‘체다크’(공의)는 ‘경제적인 측면과 윤리도덕적인 측면에서의 의(義)’와 관련된 용어로 ‘경제적 의로움과 윤리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진실 된 것’을 뜻합니다. 

  ‘미쉬파트’(정의)와 체다크’(공의)가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8장인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를 설명하는 중에 등장합니다. 창세기18:18-19절을 읽어봅시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말씀 중 ‘의와 공도’가 바로 ‘체다크’(공의)와‘미쉬파트’(정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부르신 이유가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요구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계속됩니다. 솔로몬 왕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 여왕은 하나님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 이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대하9: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들을 세우신 이유가 ‘미쉬파트’(정의)와 ‘체다크’(공의)를 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을 부르신 이유는 바로 ‘정의와 공의’(미쉬파트와 체다크)를 구현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농부인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이 포도원의 주인인 하나님께 지불해야 할 임대료는 다름 아닌 ‘정의와 공의’(미쉬파트와 체다크)인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역사 그리고 본문의 배경이 되고 있는 이사야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은 ‘정의와 공의’(미쉬파트와 체다크)의 소출을 하나님께 지불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포학’과 권력자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마땅하게 지불해야 할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는 농부들에게 어떤 조치가 있어야 정당할까요? 본문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의와 공의’ 대신 ‘포악과 부르짖음’을 되돌린 농부들에게는 형벌이 마땅하고, 주인에게 정의와 공의를 지불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머릿돌이 된 건축자들이 버린 돌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시편118:22절을 인용하시면서 마무리하십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포도원의 비유’에 대한 말씀을 ‘모퉁이 머릿돌이 된 건축자들이 버린 돌’에 대한 말씀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예수님이 ‘언어유희’를 통해 17절, ‘모퉁이 머릿돌이 된 건축자들이 버린 돌’에 대한 말씀과 앞부분의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연결시키고 더 나아가 자신과도 연결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합니다.  

   히브리어 단어 ‘에벤’은 ‘돌’입니다. 그런가 하면 ‘벤’은 ‘아들’입니다. 17절에‘버림받은 돌’(에벤)은 13절의 주인의‘아들’(벤)임을 의미하는 언어유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이미 앞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의 이유와 목적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눅9:22,44, 18:31-33) 그것은 누가복음9:22절,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 같이 자신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결국은 ‘제 삼일에 살아’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이루실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려버린 돌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십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1:18,20-22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이렇듯 역설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동안 이스라엘이 실패해 온‘정의’과‘공의’(미쉬파트와 체다크)를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이 땅에 실현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 여러분과 저 역시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하나님 나라’라는 포도원을 맡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백성으로서의‘삶’이라는 포도원을 맡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과 제가‘하나님 나라’라는 포도원을 맡고 돌려드려야 할 소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의’라는 소출입니다(마6:33). 좀 더 구체적으로‘정의와 공의’,‘미쉬파트와 체다크’라는 열매입니다. 여러분과 저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의, 정의와 공의, 미쉬파트와 체다크로 가득한 세상이 되어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40 Next ›
/ 4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