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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능력과 위엄과 평강의 왕

  • 성경본문 : 미가 5:2~5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12월 23일 2부예배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 하니, 믿는 자여 어이 할꼬!” 찬송가 515장 1절 가사입니다. 
   내일 모레가 성탄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했는데, 세상에는 아직 갈등과 다툼과 고통과 탄식 소리로 넘쳐납니다. 다시 정의와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기다려집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약 700여 년 전에 예언한 미가 선지자의 묵시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예언했던 본문 말씀을 통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와 그렇게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상숭배와 불의와 부패

   미가 선지자는 예수님 탄생 약 7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미가가 우선 씨름했던 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의한 사회 상황이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의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 백성인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 족속이 마땅히 경외하고 경배해야 할 대상은 히스기야의 고백,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왕하19:15) 라는 말씀같이 하나님 한 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본문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은 곳곳에 우상들을 섬길 산당을 세워놓고 그곳에서 ‘새긴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산당 무당들의 ‘복술과 점’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점쳤습니다.(믹5:12-13)
   우상숭배의 실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1세기 당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실상을 디모데후서3:1-5절에 기록하였습니다. 우상 중에 가장 심각한 우상은 ‘자기 우상’입니다. 바울이 열거한 모든 것들은 자기 우상화의 구체적 현상들입니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본문 당시 미가 선지자가 씨름한 두 번째는 ‘제사장과 선지자들’ 즉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였습니다. 혹 백성들이 무지와 욕심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간다 하더라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영적으로 깨어 민감하게 경고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인도하여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본문 당시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마땅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에 대해 미가3:11-12절에서 기록합니다. 

   저를 비롯하여 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선지자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하여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벧후2:15), ‘거짓 선지자들, 거짓 선생들’의 길을 가면서 ‘평안하다, 안전하다’(살전5:3)를 남발하여 영적 실상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본문 당시 미가 선지자가 씨름한 세 번째는 권력을 가진 통치자들의 불의와 폭력과 부정과 부패였습니다. (미가3:1-3)  로마서13:1절 말씀처럼 권세 자체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세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은 ‘정의’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징계’하며 ‘선을 도모하고 증진’하므로 정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통치자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행하였습니다. 권력으로 마치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를  꺾고‘냄비와 솥’에 넣듯이 백성들을 억압하고 약탈하였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미가6:10-12절,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거짓되도다.”라는 말씀처럼 불의한 재물과 경제구조가 엄연한데도 이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미가 시대의 사회상은 어느 한 곳에도 희망을 걸 수 없었습니다. 총체적인 불의와 부패,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변방 베들레헴에 나신 왕

   미가 선지자는 이렇듯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 뿐’(사8:22)인 상황 가운데서 희망의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춥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여호와의 능력과 하나님의 이름의 위엄’으로 다스릴 ‘평강의 왕’이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통치는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 2-4절에 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2절)만이 아니라, 당시의 제국 ‘앗수르’(5-6절), 더 나아가 ‘땅 끝까지’(4절) 다스릴 통치자는 어떻게 등장합니까? 놀랍게도 그는 ‘유다 족속 중, 작은 베들레헴 에브라다’(2절)에 태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당시 수도 예루살렘에서 8km 남쪽에 위치한 작은 산골 마을입니다. 베들레헴은 여호수아서 15장에 기록된 150여개의 유다 성읍들 중에도 끼지 못하는 ‘작은 고을’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왕의 ‘등장 방식’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자, 메시아의 출생지는 보잘 것 없지만 그는 ‘이스라엘, 앗수르, 땅 끝까지’ 다스릴 왕입니다. 그의 ‘근본은 상고요 영원’(2절)입니다. 이 땅에 어느 사람도 그 기원을 ‘상고(上古)와 영원(永遠)’에 둘 사람은 없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기원을 태초에 둘 유일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요한복음1:2-3절,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라고 증언했던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미가와 동시대에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와 왕은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신다고 선포하였습니다(사9:6-7). 
   이런 하나님 나라 왕, 메시아의 ‘등장 방식’은 또한 그의 ‘통치 방식’이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능력’과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4절)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십니까? 본문 4절 하반절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원리를 ‘단 한 단어’로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그것은 ‘목축’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세상의 군왕들’처럼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을 ‘짓밟아 황폐하게’(6절)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리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양을 돌보는 ‘목자’로서 세상을 돌보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0:14-15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양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하는 ‘선한 목자’로서 그의 양들을 다스리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바로 앞둔 상황에서 제자들을 서로 ‘누가 크냐?’는 다툼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5-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방식’입니다. 

   세상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는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통치방식’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살 길을 찾습니다.
   세상은 비로소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방식을 통해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 풀 위에 내리는 단비’(7절)같은 평안과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변방 ‘베들레헴 에브라다’를 통해, 그것도 ‘한 아기’로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은 진정한 ‘평강’, ‘샬롬’(5절)을 누리게 됩니다. 본문 5절 초반절을 읽어봅시다.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그렇습니다. 한 아기로 유대의 변방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불화를 해결하시고, 세상에 샬롬을 가져다주시는 분, 아니 ‘평강’ 자체이십니다. 변방 베들레헴에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갈등과 다툼, 그로 말미암는 고통과 죽음을 치유할 유일한 치료제입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은 로마서5:10~11절 말씀 같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입니다. 사람의 가장 끔찍한 고통은 바로 이 하나님과의 불화에서 기인합니다. 놀랍게도 가장 끔찍한 하나님과의 불화를 잠재울 분은 베들레헴 에브라다에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오는 ‘은총과 감사와 능력’으로 다른 사람과의 화목을 위한 발걸음을 내 딛게 됩니다. 고후5: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는 말씀 같이 다른 사람들과의 화목(화평)하게 하는 일을 자신에게 주신 사명과 직분으로 여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평강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이런 저런 모양으로 갈라진 세상의 모든 갈등과 분열과 다툼의 골짜기 한 복판으로 그리스도의 평강을 흘려보냅니다. 

   유대 땅 변방 베들레헴에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관계의 불화를 해결 하실 뿐 아니고 세상 만물의 갈등과 다툼의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11:6-9절에서 묘사했던 것 같이 만물의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집니다. 첫 창조가 완성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창1:31)라고 했었는데 죄로 엉망이 되었던 세상은 다시 한 번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라고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하늘과 새 땅’(계21:1)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고통 두려움 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계시니!” 라는 복음 찬양의 가사와 같이 세상은 평화, 평강을 갈구하지만 들리는 것은 갈등과 다툼, 그로 인한 고통과 두려운 소식뿐입니다. 어디에서 세상은 평강을 누릴 수 있을까요? 누구를 통하여 우리는 샬롬을 누릴 수 있을까요? 오직 유대 변방 ‘베들레헴 에브라다’를 통해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 모든 것으로부터 무력한 ‘한 아기’로 우리 가운데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분의 ‘등장방식’ 같은 ‘통치방식’을 받아들이고 동일하게 행사하는 것을 통해서만 세상은 평강, 샬롬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여기계시니!’ 라는 찬양의 선언같이 ‘변방’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삶의 ‘한 복판’으로 모셔 들이십시오. 그분이 오시는 그 자리, 그 사람에게 평강, 샬롬이 임할 것입니다. 그 분은 ‘평강’(미5:5)이시기 때문입니다.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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