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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6모든 이의 친구가 된 공공의 적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9:1~10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12월 16일 2부예배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남쪽 30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입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 6장에 등장하는 여리고 성의 유적들이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역사의 지층을 지니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도시 여리고의 역사지층 만큼이나 겹겹이 쌓인 심층을 뚫고 핀 ‘메마른 광야의 백합화’같은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리고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 일어난 일입니다. 삭개오는 자신 위에 겹겹이 드리워진 거절의 단층들을 스스로 걷어내기 불가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삭개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거절과 적대의 단층들을 뚫고 자유와 환대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삭개오에게 일어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모든 이들에게 일어날 일의 전형입니다. 삭개오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공공의 적, 세리장 삭개오

   삭개오는 본래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본문 1-3절을 읽어봅시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본문 당시의 과세 체계는 ‘징세 도급제’(tax farming)였습니다.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당지역의 세금을 거둘 권리를 얻은 세리는 그 해가 끝날 때에 할당받은 과세액을 로마당국에 넘겨야 했습니다. 얼마가 할당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오직 세리일 때가 다반사였습니다. 당국으로부터 할당된 세금에다 자신의 인건비와 활동비용 정도를 덧붙여 주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의롭게 세금을 부과하는 세리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세리들은 할당된 세금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부과해 부를 축척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당시에 ‘세리=죄인’이라는 등식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경멸했으며 세리와 그의 가족들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당시의 경제 체제하에서 세리는 자연스레 ‘부자’가 되었습니다. 본문의 삭개오 역시 부자였습니다. 더군다나 삭개오는 일개 ‘세리’가 아니고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어느 정도의 부자일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리장과 부자로서 누리는 권리와 윤택함이 있었지만 삭개오는 가족 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공공의 적’이었습니다. 단지 경제적 차원에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기에 민족적, 정치적인 의미에서도 공공의 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세리장 삭개오를 깊은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키가 작았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고자하여 운집한 사람들 뒤에 서 보았지만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세리장이요 부자인, 나이든 삭개오가 사람들 뒤에서 예수님을 보고자 ‘까치발’을 하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납니다. 뒤에서 얼씬거리는 삭개오가 더욱 볼 수 없도록 사람들이 암묵적 방해를 했을 것이 자명합니다. 누구라도 이런 시선과 취급은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됩니다. 

   히브리 이름인 ‘삭개오’는 ‘깨끗한’, ‘순결한’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 볼 때에 사람들이 조롱 투로 ‘삭개오?’, ‘오, 삭개오!’라고 불렀을 것이 분명합니다. 삭개오는 가족과 동료 세리들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뜻밖의 은혜, 놀라운 사랑

   사람들의 경멸적 시선과 거절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날카롭게 다가왔지만 삭개오는 거기에서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남은 마지막 한 줄기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일행이 예루살렘을 향해 걸으시는 방향 앞쪽으로 미리 ‘달려가 보기위하여 돌 무화과나무로 올라’(4절)갔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살폈듯이 본문 당시에 나이든 어른, 특히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부를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달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체면을 스스로 손상하는 일입니다. 더 더욱 ‘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삭개오는 ‘달리는 일과 올라가는 일’을 감행합니다. 

   삭개오가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갔던 좀 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평생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종교를 연구한 ‘케네스 베일리’는 삭개오가 넓고 무성한 돌 무화과나무 잎 속에 자신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은 보고 싶었지만 군중의 눈에는 띄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의도와는 다르게 삭개오는 곧 들키고 맙니다. 나무 잎 사이에 숨은 삭개오를 처음 발견한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본문 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을 따라 돌 무화과나무 주위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희색만면했습니다. ‘독안에 든 쥐 꼴’이 된 삭개오를 보고 통쾌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게네스 베일리의 표현대로 “누구라도 마음에 떠오르는 육두문자를 마음껏 내 지를 수 있었고, 한 사람의 욕설이 다른 사람을 자극하고, 순식간에 어두워지면서 한바탕 폭동이라도 일어날 기세”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눈을 들어 ‘쳐다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6절) 이것이 예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5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삭개오를 향한 ‘조소와 비난, 거절과 적개심’을 한 순간에 ‘위로와 격려, 용서와 환대’로 바꾸십니다. 삭개오에게 돌아 갈 ‘조소와 비난, 거절과 적개심’을 자신에게로 돌리십니다. 사람들이 ‘삭개오’를 조롱조로 ‘삭개오?’, ‘오, 삭개오!’라고 불렀을 것이 분명한 반면에 예수님은 진심으로 ‘삭개오야!’,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 삭개오야!’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그의 집에서 유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당시에는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 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형제와 친구가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이 죄인, 삭개오에 집으로 들어가 유하는 것은 예수님이 죄인 삭개오의 형제요 친구임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을 읽어봅시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유하시므로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돌아갈 ‘정죄와 판단’을 자신에게 돌리시고 떠맡으십니다. 이것이 삭개오에게 임한 은혜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 은혜를 이사야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숨어서라도 예수님을 보기 원했던 삭개오에게 ‘뜻밖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사랑’이 임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저, 주님을 보기 원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요 사랑입니다. 


진정한 회개, 주권의 전이

   진심과 사랑은 언제나 통하는 법입니다. ‘뜻밖의 은혜와 놀라운 사랑’을 대면한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6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집에 모신 삭개오는 예수님께 다음 같이 다짐하고 약속합니다. 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서서’ 주님께 다짐합니다. 몸의 자세만 아니고 말의 시급함과 단호함을 보여줍니다. 유대의 문화적 배경은 삭개오가 약속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합니다. 유대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공익을 위해 자신의 재산 가운데 20%를 내 놓는다면 그는 관대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보다 더 많은 분량의 재산을 기부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또한 민수기5:7절에는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끼친 손해에 대해 본래 값의 20%를 더 변상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 절’로 갚겠다고 합니다.

   삭개오의 다짐과 약속은 하나님의 ‘뜻밖의 은혜와 놀라운 사랑’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진정한 회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진정한 회개의 핵심은 ‘주권의 전이(轉移)’입니다. 내 소유 뿐 아니라 생명, 삶 전체의 주권이 ‘내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정하고 신뢰한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지 마음의 변화, 마음의 다짐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회개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행동의 변화가 있습니다. 
   짐 월리스는 ‘진정한 회개’를 ‘3B’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회개는 ‘믿는 것’(Belief)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 회개는 ‘속하는 것’(Belong)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회개는 ‘행하는 것’(Behavior)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하나님 나라 시민답게 행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짐 월리스가 말한 진정한 회개의 전형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종종 회개를 ‘전환점’(turning point), 즉 세상을 행해 걷던 길을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진정한 회개는 돌아서는 것만이 아니고 돌아선 방향으로 계속해서 걷는 ‘지속적 여정’(steady path)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회개는 한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품에 온전히 이를 때까지 계속적인 돌이킴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삶의 방향을 돌이켜 진정한 주님의 제자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삭개오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남들이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겪든지 자신만 윤택하면 상관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이웃들을 향해 가슴을 열었습니다. 지갑을 열었습니다. ‘공공의 적’이었던 사람이 ‘모든 이의 벗’이 되고자 두 팔을 벌렸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은혜와 능력입니다. 여러분과 저, 주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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