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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주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 성경본문 : 마가복음 1:1~8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12월 2일
시인 김남조는 ‘대림’(待臨)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중략) 성탄을 기다리는/ 십이월의 목마름/ 시 쓰는 잉크도 붓끝에서 마르고/ 천지사방 수난의 우설(중략)... 구세주의 강산이 감감하고/ 그러나 저희는/ 죽도록 대망을 배웁니다.”
   기다림은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의 박동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기다림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고양하여 삶의 무게를 이기고, 살 희망과 힘을 주는 기다림입니다. 씨 뿌림 이후 결실, 결혼과 출산, 성장과 성숙을 위한 기다림 등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두운 나락으로 빠지게 하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의 긴장과 짜릿함은 있으나 결국 마음과 영혼을 더욱 깊은 허무의 수렁에 빠뜨리고 마는 기다림입니다. 요행과 이루지 못할 성취, 경쟁자의 실패와 적대자에 대한 복수의 때를 기다리는 것 등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다림이 있습니까?
   오늘은 메시아로 이미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승천하시며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리는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떻게 주님을 기다려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소리

   마가복음 기록자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세례요한의 등장과 선포로 시작합니다. 예수님보다 앞서 세례요한이 등장한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2-4절 말씀 같이 이미 수백 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누구입니까? 세례요한 은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눅1:5,13-17)입니다. 본문 당시 제사장직은 출애굽기28:41절, “너는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라는 말씀을 따라 대를 이어서 위임되었습니다. 아버지 사가랴가 제사장이니 세례요한 역시 제사장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평생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제사장 가문 출신 세례요한이 평생 머물 곳은 성전이 있던‘예루살렘’이었습니다. 세례요한에게는 제사장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이 가져다주는 후광과 안정된 삶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이렇게 보장된 자리와 미래를 뒤로 하고 하루의 양식조차 보장되지 않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메마른 땅, 광야로 나갔습니다. 
   세례요한은 왜 광야로 나갔습니까? 물론 단선적으로 말하자면 세례요한이‘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되어 ‘주의 길을 준비’(3-4절)하라는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세례요한은 어떤 마음의 씨름을 했을까요? 세례요한에게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광야는 무엇입니까? 케네스 리치는 그의 책 ‘하나님 경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는 단순성으로 회귀입니다. 그곳은 온갖 허식에 얽매인 사람들을 벌거벗게 해 하나님 앞에 전적인 무력자로 세웁니다. 광야는 악한 세력과 온몸으로 싸우며 하나님 앞에 경배자로 서게 합니다.” 또한 롤란드 월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는 인간의 모든 도움과 위로가 없는 원시적 공간이요 그 철저한 부재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현장이다.” 
   그렇습니다. 세례요한은 ‘인간의 모든 도움과 위로, 사람을 얽매이는 온갖 유혹과 허식’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 앞의 ‘단독자’요, ‘무력자’로 서기 위해서 광야로 나갔던 것입니다. 오직 그의 생명과 삶이 하나님에게만 달렸음을 매순간 온 몸으로 느끼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 광야로 나갔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생활상이 본문 6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요한은 낙타 가죽으로 만든 거친 옷을 입고 메뚜기와 꿀과 같은 야생 식물로 하루하루를 지내야했습니다. 연중 강우량이 50-200mm정도 밖에 되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그것들조차 충분히 얻을리 만무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렇게 사람의 위로와 도움이 없는 원시적 공간 ‘광야’로 나갔습니다. 오직 광야의 고요 가운데 들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왕상19:12)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사람들은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오심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만이 자신의 생명과 삶의 유일한 주관자이심을 알게 되고, 그 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 본문에 등장하는 것 같은 물리적인 ‘광야’도 없을 뿐 더러, 세례요한 같이 가정과 생업을 완전히 뒤로 하고 광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삶의 안팎의 소요와 분주함, 온갖 허식과 높아진 마음’을 내려놓고 ‘낮아진 마음, 가난한 마음’으로 ‘단독자’로서 ‘무력자’로서 하나님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런 낮아지고 가난한 심령에 주님이 오십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은 바로 그런 사람의 것입니다(마5:3). 

내 뒤에 오시는 이

   광야로 나간 세례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4절)를 전파했습니다. 광야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곳에서 소리쳐 외쳐본들 누가 듣겠습니까? 하지만 세례요한은 본문 2-3절에 기록된 것 같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고 기꺼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3절)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 중 하나 둘 씩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본문 5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라는 말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왔습니다. 본문 당시 사람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메마르고 헐벗고 가난한 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머물고 있는 ‘광야’ 만큼이나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과 주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에는 ‘무수한 제물과 숫양의 번제’(사1;11)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21:12-13)라고 분노하실 만큼 성전은 오염되고 타락했습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광야에 있던 세례요한에게 나오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상황이 오늘 우리교회, 한국교회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에게 나오는 사람들에게 세례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베풉니다. 세례요한은 시편130:3절,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라는 말씀과 같이 그 무엇 하나 숨길 수 없는 벌거벗은 땅,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단독자, 무력자’로서 각자의 죄의 실상을 깨닫고 돌이키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의 세례’를 베풉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일서1: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과 같이 광야에 선 단독자, 무력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그의 죄를 기꺼이 사하십니다. 시편103:12절,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말씀 같이 회개한 사람의 죄과를 완전히 옮기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세례요한은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이 다’(5절) 자기에게 나아와도 결코 자신이 서 있던 ‘광야’그 자리에서 한발짝도 이동하지 않습니다. 돌 하나도 딛고 올라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자 그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이렇게 외칩니다. 본문 7-8절입니다.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 ‘뒤에 오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목하게 합니다. 자신은 자신 뒤에 오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발 끈을 매고 푸는 종이 되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주를 높입니다. 세례요한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것만이 그의 삶의 이유와 사명이라고 간단히 선포합니다. 
   이런 세례요한에 대해 예수님은 마태복음11: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이란 자신의 삶과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1:20-21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는 말씀과 같이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러분과 저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그것을 ‘간절한 기대와 소망’으로 품고 사는 사람에게로 주님은 단숨에 달려오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미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여정을 걷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악한 세력의 유혹으로 인해 부침을 겪고 있고, 그로 인해 때로는 눈물과 고통의 골짜기를 걷기도합니다. 하지만 이런 눈물과 고통의 골짜기는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구원을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시며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하고, 그의 오실 길을 곧게’(3절)하는 성도가 됩시다. 세례요한 같이 ‘담백하게! 한결같이! 강직하게!’ 주님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하고 곧게 하는 성도가 되십시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으로 말씀을 맺습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에리는 일 있을까(중략)//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는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은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중략).”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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