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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1천국은 이런 사람의 것입니다!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8:15~30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11월 11일 2부예배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헤셀은 ‘경이감과 놀라움’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본질로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문명이 발전할 때에 경이감은 후퇴한다. 이 후퇴야 말로 우리의 마음의 상태의 경종을 울려야 할 조짐이다. 인류는 정보가 부족하여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무엇이 부족하여 망한다면 그것은 진가(眞價)를 감지하는 능력일 것이다..., 지혜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있다. 경외다. 

당신의 놀라는 감각을 잃어버릴 때, 헛된 자만심으로 인해 당신의 우러러보는 능력을 위축시킬 때, 우주는 당신 앞에 하나의 장터가 되고 만다. 경외의 상실이야말로 바르게 보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가장 위대한 통찰은 경외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지혜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경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을 통해 임하는 구원에 대해 경이와 놀라움으로 반응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자신의 행동은 율법 규례에 단단히 묶어놓아 그 의로움으로 자신만만하지만 마음은 재물과 장터에 빼앗긴 한 부자관리가 등장합니다. 이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천국(하나님 나라)은 어떤 사람의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천국의 표상, 어린 아이들

   오늘날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만 본문 당시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을 ‘인간이하’, ‘어른들의 소유물’, 어떤 경우는‘일회용품’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온전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본문 15절,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이라는 말씀에 보니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당시의 저급하고도 왜곡된 인간 인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그렇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17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과 같이 어린 아이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천국인의 표상(表象)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의 어떤 면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천국인의 표상으로 제시된 것일까요? 첫째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때로는 어리석을 정도로 사람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습니다. 이런 어린 아이들의 ‘순전한 믿음’, 그것이 하나님 나라, 천국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히브리서11: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는 말씀과 같이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순전한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 하실 일에 대한 믿음이 당신을 구원합니다.(눅18:42).  

 ‘순전한 믿음’과 함께 어린 아이들이 천국인의 표상으로 제시된 두 번째 특성은 서두에서 말씀드렸던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경이감과 놀라움’입니다. 한마디로 ‘경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편123:1-2절,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라는 마음가짐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세계를 ‘경이감과 놀라움’으로 바라봅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끝없이 펼쳐진 경외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기대와 경외심, 열린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듯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 그칠 줄 모르는 경외심으로 바라보고 기대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천국을 가로막는 우상들

   순전한 믿음과 경외로 ‘만져주심을 바라고 예수님께 나오는 어린아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본문 18-23절에는 한 부자 관리가 등장합니다. 
   이 부자 관리의 관심사는 본문 18절과 같이 ‘영생’이였습니다. 이 ‘영생’(18,30절)이라는 말은 이미 앞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하나님 나라’(16,17절)와 이후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24,25), 그리고 ‘구원을 얻다.’(26절)라는 말과 의미상 동의어입니다. 
   영생, 하나님 나라(천국), 구원을 구하는 관리에게 예수님은 십계명 중 사람간의 관계를 다룬 계명들(간음, 살인, 도둑질, 거짓증언, 부모공경)을 말씀하십니다. 본문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 준수를 통하여 ‘영생,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자관리는 자신 만만하게 그런 것들은 이미 어려서부터 잘 지켜왔다고 답합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 이 부자는 ‘영생, 천국, 구원’을 누릴 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부자의 이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아직도 부족한 것 한 가지’를 보셨습니다. 그것은 본문 22-23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 같이 ‘재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에게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영생, 천국, 구원)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부자관리는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무엇이 ‘영생, 천국, 구원’을 향한 이 관원의 길을 가로막은 것입니까? 재물 때문이었습니다. 

   재물과 재물이 많은 것 자체가 죄이거나 악은 아닙니다. 재물은 야고보서1:17절,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은사요 선물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은사와 선물인 재물을 은사와 선물로 주신 하나님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보다 앞서 좋아하고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 탐심을 성경은 ‘우상숭배’로 규정합니다. 골로새서3:5절 말씀과 같이 재물에 대한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는 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란 선의 상실일 뿐 아니라 그 대신 다른 무엇을 소유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영생, 천국, 구원’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가로막는 우상들이 여럿이 있을 수 있습니다. ‘풍성한 삶의 초대’에서 김형국 목사님은 우상들을 ‘4P’로 정리했는데, 본문에 나오는 ‘재물’(property)에 대한 탐심을 비롯해, ‘권력’(power), ‘쾌락’(pleasure), ‘명예’(prestige)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이외에도, ‘편안함, 독립, 일, 내집단, 가족, 외모, 사상, 종교, 성취’ 등 보다 세분해서 우상숭배의 예들을 제시했습니다. 이뿐이겠습니까? 때로는 ‘자존심, 도덕적 성취, 취미’까지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재물, 권력, 기쁨, 명예’는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님보다 앞서고, 그 사람의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우상입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숭배하는 우상을 중심으로 삶을 재편하게 되고 그 결과는 예외 없이 불행과 고통입니다. 본문 24-25절이 그 실례를 보여줍니다. 

   분명히 확인합시다. ‘영생, 천국, 구원’은 내가 내려놓을 수 없는 최후의 것을 하나님 앞에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을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비움 없이는 채워질 수 없는 것이고, 버림이 없이는 따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천국에 전생을 건 사람들

   하나님 나라(천국)는 그것에 자신의 전생(全生)을 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따랐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본문 28절에 등장합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가족도 생계도 다 팽개쳐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마지막 부분 29-30절이 종종 그런 오해를 낳게 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본문 당시나 혹은 이 시대에도 일부 이슬람이나 공산국가 등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하나님과 가족, 하나님과 생계 간의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일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가족과 생계를 등져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와 같이 신앙의 자유가 있고, 개인의 의사선택이 존중받는 상황에서 본문 29절을 문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종종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려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과 주장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도 내 팽개치고, 하던 공부와 일, 직장도 팽개치고, 재산도 다 팔아 바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이단들이 종종 이런 주장으로 사람들을 미혹해서 가족들을 고통 속에 빠뜨리고, 결국은 본인조차 헤어 나올 수 없는 삶의 절망에 빠뜨리곤 합니다. 속지 않아야 합니다. ‘가족에게 알리지 말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 고 하는 사람들은 100% 속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마태4:18-20)을 받은 이후에도 가족들을 돌보았음을, 예수님과 함께 열병 든 자신의 장모를 찾아 고쳤던 사건(마태8:14-15)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까지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들에게 부탁(요19:27)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전생을 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그곳이 ‘어디이든 어떤 순간이든’ 하나님이 나와 세상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고전7:17,24절 말씀에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이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눅10:27)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전생을 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십니까? 본문 30절과 같이 인도하십니다.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현세만 아니고 내세에도 영원히 하나님과 친밀한 영적 관계 안에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고린도전서2:9절,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고 할 만큼 여러분과 제가 장차 누릴 영생, 천국, 구원은 ‘경이롭고 놀라운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의 유업’(벧전1:4)입니다. 그 놀라운 경이로운 영생과 천국과 구원을 ‘장터’로 오염시키는 모든 우상들을 물리치고, 어린아이와 베드로 사도와 같이 ‘순전한 믿음과 경외함’으로 주의 길을 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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