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설교영상

설교영상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018.09.16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도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7:1~10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9월 18일 2부예배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34개국 중 멕시코, 터키에 이어 3번째로 높습니다. 남북한의 체제갈등,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 기성세대와 다음세대의 세대갈등, 남성과 여성의 성 갈등, 부자와 서민의 빈부갈등, 고용주와 근로자의 노사갈등, 지역갈등, 외국인 유입으로 인한 인종갈등, 종교갈등 등 요인이 참 많습니다. 이런 갈등과 반목은 다툼과 분열로 이어지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와 아픔, 슬픔과 고통을 남기게 됩니다. 심한 경우는 상대를 원수 대하듯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적잖은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될 것’과 ‘다른 사람을  무한정 용서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이런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은 ‘믿음’과 ‘순종’의 문제임을 말씀하십니다.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남을 실족하게 하는 일

   누가복음 15장과 16장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말씀하신 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삼부작의 비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비유’(15:3-32),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16:1-13),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16:14-31)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세리와 죄인들, 바리 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해 말씀하시던 예수님이 이제는 자신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9:51-19:45)하고 있는 ‘제자들에게’(17:1)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주제는 제자들 공동체 안에서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제자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 ‘제자도의 4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2절에서는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 3-4절에서는 ‘형제를 무한정 용서할 것’에 대해서, 5-6절에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지닌 능력’에 대해서, 7-10절에서는 ‘겸손한 종의 순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4가지 주제가 느슨하게 연결되어진 일종의 잠언과 같은 형태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도의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을 읽어봅시다. 1절에 표현된 ‘실족하게 하는 것’에 대한 원문 헬라어는 ‘스칸달라’인데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모든 장애물’을 의미합니다. 잘못된 진리의 ‘유혹’일 수 도 있고, 거짓된 ‘교훈’일 수 도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나의 ‘자유’(고전8:9)일 수도 있습니다. ‘독한 시기와 다툼과 자랑’(약3:14)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성내는 것과 비방’(약1:20,4:11)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고, 실족하게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 위험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는 것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하실 정도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질 장애물을 놓지 마십시오! 말로든, 행동으로든! 레위기19:14절,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는 말씀과 같이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로마서14:21,19절 말씀같이 “무엇이든지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운” 것이며,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루 일곱 번이라도 용서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도의 두 번째는 ‘형제의 죄에 대한 조심과 용서’의 문제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직면하게 될 때에 화가 나고, 당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보복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나에 대한 죄가 아닌 어떤 형제자매의 허물과 죄에 대해서도 그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며 다른 사람에게 과장해서 말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본문3-4절입니다.

   먼저는 성급한 대응과 판단, 정죄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제자매의 허물과 죄를 보게 되면 우리는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경고(책망)해야 합니다.’ 바로잡아 주려고 힘 써야 합니다. ‘모르는 게 약’, ‘연루되기 싫다’라는 마음으로 방관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형제 된 도리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갈라디아서6:1-2절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어떻게 권고하고 경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마태복음18:15-18절에 좀 더 자세한 원리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형제의 잘못을 견책하는 데에는 이렇듯 주의가 필요합니다. 세심하고 정교한 과정을 요합니다. 

   둘째는 ‘용서’(화해)해야 합니다. 물론 무조건 용서는 아닙니다. ‘회개’라는 전제가 붙어 있습니다. 회개가 전제된 용서는 몇 번 정도면 족합니까? 본문 4절에 의하면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한정’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병행인 마태복음18:21-22절에서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라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한 회개와 돌이킴이 전제되어 있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는 무한정 형제를 용서하고 받아들어야 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도의 세 번째는 ‘겨자씨만한 믿음의 능력’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으며, 죄 범한 형제를 용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사도들’인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5절)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믿음’과 예수님의 생각하는 ‘믿음’간에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의 분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믿음의 진정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진정하다면 믿음의 양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의 분량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진실함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있는 ‘신념’이나 그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핵심’은 ‘믿음의 대상’에 있습니다.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11: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계신다!’라는 것과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땅하게 응대해 주신다!’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더 하거나 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믿음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고 믿음과 불신의 양자택일’의 문제입니다. 

 ‘믿음 + 믿음 + 믿음 = 큰 믿음’이라는 등식으로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 = 큰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진실한 믿음이면 그 크기가 ‘겨자씨’만해도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그 믿음이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라 하여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장법을 통해 ‘믿음의 분량’이 아닌 ‘믿음의 진정성’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큰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입니다. 



마땅한 할 일 행한 종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도의 마지막은 ‘겸손한 종 같은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1세기 당시의 ‘주인과 종’의 사회제도를 들어 제자가 걸어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 7-10절을 읽어봅시다.

   본문 당시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종(노예)이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느라고 수고 했다고 주인이 종 더러 와서 앉아서 먹으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종이 주인이 명한 것을 다 수행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는 주인은 없습니다. 종은 밭과 들일을 마쳤어도 집안일이 있으면 의당 해야 합니다. 주인의 명령은 마땅히 할 일이지, 사례를 염두 해 두고 순종하는 종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들의 자세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종’으로 부름 받은 그 어떤 사람도 그렇게 불림 받은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늘 반대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종’으로 부름 받은 것을 큰 ‘영광’과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베드로, 야고보 등 성경을 기록한 기록자들은 자신들이 기록한 성경의 첫 머리에‘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예수 그리스도의 종, 베드로’ 라고 자신들을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것이 이렇듯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정도 앞서 출생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직 예수님이 오실 길을 닦았던 세례요한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요1:27)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신발 끈을 묶고 푸는 것은 ‘종’의 일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되는 것조차 과분하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니 또 다른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남을 실족시키지 않음으로, 형제의 죄에 대해 무한정 용서함으로, 주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으로, 마땅히 할 일을 행하는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40 Next ›
/ 4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