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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양날의 칼, 소유와 재물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2:13~21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5월 13일 2부예배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했습니다. 이 시대가 소유와 재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가늠 하게 합니다. 하지만 부자 되는 것은 무조건 좋아할 일만은 아닙니다.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와 재물에 대한 바른 인식과 제대로 다룰 만한 능력이 없으면 오히려 그로 인해 삶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손에 들린 예리한 수술용 칼이 사람을 고치고 살리는 결정적인 도구이지만 미숙한 어린아이 손에 들리면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경에는 돈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매우 많습니다. 돈과 재물에 대한 기록은 ‘믿음과 기도’에 관련된 구절을 합친 수의 두 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 중 15%나 되는 말씀이 돈과 소유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양도 많지만 의외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예수님은 소유 재물이 늘어,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 찬사하시기보다는 오히려 그 위험에 대해 경고조로 말씀하신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본문을 통해 소유와 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재물과 형제

   예수님께 한 사람이 찾아 와서 자기 형에게 명하여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나누도록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14절)는 반문으로 이 요청을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의 상황을 어렵지 않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말이나 글로 유언을 남기지 않고 죽은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는 땅이 있었고 두 형제가 이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법에 의하면 이런 상황에 유산은 형이 동의해야만 나누어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예수님에게까지 가지고 온 것을 보면 형제간에 원만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원만한 대화를 할 만큼 형제관계의 의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온 사람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다는 것을 여러 가지 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온 사람을 ‘이 사람아’라고 부릅니다. 본문 바로 앞에서 제자들을 향해 ‘내 친구’(4절)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입니다. ‘이 사람아’라는 말은 불쾌감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이런 표현에는 ‘책망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을 어떻게 여기셨는지 15절의 말씀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재산분할’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 습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탐심’이 문제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탐심’(φλεονεξια)은 단순히 돈 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탐심 즉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탐심에는 끝이 없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 록 펠레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면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록 펠러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 보다 조금 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조금 더 갖고자 하는 욕망, 탐심은 끝이 없습니다. 만족할 줄 모릅니다. 

   탐심의 문제는 단지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재산분할 문제’ 에 대한 중재를 요청했던 사람에게서 예수님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 ‘그들에게’(15절) 말씀하십니다. 탐심의 문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형제간의 재산분쟁 소송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닙니다. 그 정도로 일반적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듯 재물과 소유에 대한 탐심은 ‘형제간의 의’를 깨뜨리고 ‘형제관계’를 파경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재물과 소유는 ‘의좋은 형제’의 우화를 통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형제 관계의 의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도구이고 수단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탐욕’이 제대로 다루어져서 ‘형제간의 의’가 회복됩니다. 



재물과 자신

   돈과 재물과 소유가 느는 것을 반길 수만은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돈과 재물과 소유는 그것을 탐하는 사람을 회복 불가능하도록 망쳐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6~20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자의 비유’가 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부자의 인생이 어떻게 형편없어지는지 한 가지씩 살펴봅시다. 무엇보다 먼저 물질적 부요함은 ‘밭의 소출이 풍성함’(16절)이 어디로부터 오는 지를 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과 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소출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대 풍년은 전적인 창조주의 은총입니다. 농사의 대 풍년은 결코 농부의 수고와 재주와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신명기11:14절,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라는 말씀과 같이 땅의 소출, 소출의 풍성함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부자는 이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밭의 소출의 풍성함’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줄로 착각’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사로잡힙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함몰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으로보면‘내가’라는 표현이‘6번’나옵니다만 원문 헬라어로는 ‘나의’라는 단어가‘4번’,‘나는’이라는 단어가‘8번’, 총 12번이나 나옵니다. 부자는‘내 곳간’,‘내 모든 곡식’,‘내 물건’,‘내 영혼’등 온통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만큼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정도가 아니고 자기 탐닉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호모 인쿠바투스 인 세’(homo incurvatus in se) 즉 완전히 ‘자기 안으로 구부러진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비유의 주인공은 본문 17절,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기를” 이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오직 자기 자신과만 대화’ 했습니다. 본문이 배경이 되고 있는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중요한 일이 있으면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과 오랜 시간 의논하여 결정을 내리곤 했습니다. 이렇듯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온 동네가 서로 단단히 엮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주인공은 주위에 가족이나 친구를 비롯해 그 누구도 없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도 그가 상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씁쓸하지만 사람이 많은 부를 얻을수록 이웃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일반적 사실입니다. 이런 역학 관계를 이사야5: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이 비유에서 부자의 삶의 결국을 본문 19~20절은 재미있는 언어 유희를 통해 보여줍니다.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다고 자신의 영혼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자축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지를 언어 유희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와 삶을 먹고 마실 것, 쓸 물건과의 관계 정도로 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람이 그 정도의 존재입니까? 이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사람은 동물 이상이 아니다’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동물 이상입니다. 사람은 재물과 소유 외에 누려야 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넘치도록 선물로 받은 존재입니다. 사람은 ‘만물의 아름다움, 형제의 사랑, 친구의 우정, 공동체를 위한 헌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동역’ 등 수많은 생의 보람과 기쁨의 선물을 받고 누려야 할 존재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본문 부자는 이 모든 ‘선하고 아름다움’을 외면하고 오직 ‘내 곡식, 내 물건, 내 곳간’에 자신을 가두고 말았습니다. 


재물과 하나님

   돈과 재물과 소유를 반길 수만은 없는 마지막 이유는 돈과 재물과 소유를 탐하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20~21절을 읽어봅시다. 
   돈과 재물과 소유에 대한 탐욕은 결국 하나님을 외면하기까지 만듭니다. 재물과 소유에 탐닉되었던 부자는 자신의‘곡식과 물건과 곳간’이 자기‘영혼’을 책임져 줄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재물과 소유’를 의지했습니다. 재물과 소유는 이렇듯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6:24절 말씀과 같이 재물은 사람을 놓고 하나님과 견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녔습니다.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자기 영혼의 중심에 두지 않고 재물에 탐닉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기는 것’(롬1:25)입니다. 그것은 골로새서3:5, 에베소서5:5절 말씀과 같이 ‘우상숭배’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과 저, 우리는 누리고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전도서3:12~13절 말씀과 같이 나의 생, 나의 삶 전체가 ‘하나님 선물’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곡식과 물건, 곳간’뿐 아니라‘영혼’까지‘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소유와 재물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숨까지도‘우리의 권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본문 20절에게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도로’ 찾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소유와 재산, 시간과 생명까지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으로 인정하며 사는 사람을 가리켜 성경은 ‘청지기’라고 합니다. 모세가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신명기33:1,13~16절을 통해 자기와 자기 민족이 누린 모든 것이 ‘하나님 선물’이었음을 유언으로 남깁니다. 
   청지기로서의 삶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욥입니다. 욥기1:20~21절을 읽어보십시오. 욥의 고백만이 아니고 우리 모든 사람의 고백이어야 마땅합니다. 

   비유를 마치시면서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일’에 자신의 재물과 시간과 재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베드로전서4:10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는 말씀과 같이 선한 청지기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 진정한 부자입니다. 그런 부자들이 다 되십시오!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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