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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5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1:1~4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3월25일 2부예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에 대해서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주기도문’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간구’에 앞서 ‘하나님의 이름, 나라, 뜻’을 먼저 구할 것을 말씀하여 주셨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구조에 근거한 것으로 우리로 하여금 ‘자기 안에 매몰’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우리를 위한 간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나’의 기도 아닌‘우리’의 기도

   우리에 대한 간구에 있어서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주기도문은 ‘나’를 위한 간구가 아닌 ‘우리’를 위해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을 읽어봅시다. 
   우리를 위한 간구는 세 가지입니다. ‘우리의 양식, 우리의 죄 용서, 우리의 시험’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에 대한 기도 세 가지를 제시하면서‘우리의’, 또는‘우리가’라는 표현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 번역에는 5회이지만 원문에 의하면‘8회’나 등장합니다. 그 만큼 주기도문은 개인 기도가 아닌,‘우리’의 기도, 즉 공동체의 기도, 공동체적인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나의 양식’이 아닌‘우리의 양식’,‘나의 죄 용서’가 아닌‘우리의 죄 용서’,‘나의 시험’이 아닌 ‘우리의 시험’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우리’에 누가 포함됩니까? 먼저 영광스럽고도 감사한 것은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우리’에 자신을 포함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3:35절에서‘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15:14절에서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 안에서 스스로를 ‘우리’에 포함시키셨습니다. 또 누가 포함됩니까? 예수님을 함께 따르며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형제자매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류의 형제자매’된 모든 사람까지 포함됩니다. 이렇듯 ‘주기도문’은 삶의 필요와 죄와 시험으로 곤경에 처한 다른 이들과 연합된 공동체의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세요!

   우리에 대한 간구를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일용한 양식’은 단지 하루하루 먹거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삶의 여건들이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구하는 것이‘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입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는 이 모든 삶의 여건이 사람 스스로의 힘이 아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임을 인정하고 신뢰함에 근거한 기도입니다. 단지 하루 양식을 얻을 능력이 없어서 구걸하듯이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는 하나님 없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행해 보았지만 결국 남은 것은 한나절 지나고 나면 말라버리는 ‘무화과나무 치마’(창3:7)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깨닫고 야고보서1:17절,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라는 말씀과 같이 삶에 필요한 모든 여건이 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을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사람의 ‘피조성’을 인정하고 사람의 생명과 삶이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음을 인정하고 의탁하는 기도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나’만을 위한 일용할 양식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일용할 양식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가깝게는 이 기도를 배우고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인 ‘우리’를 포함해,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형제자매’들인 ‘우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지금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주리고 있는 아프리카와 인도와 네팔, 북한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들과 함께 “하나님, 우리를 긍휼이 여겨주세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우리를 위한 기도의 두 번째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를 구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건인 것을 진실하게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결코 ‘정죄’하지 않으십니다(롬8:1). 하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세 시제(時制)로 기록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의 시점에서 보면 과거 사건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또한 우리에게 시작된 구원을 지금 여기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고 현재시제로 기록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죄의 영향력으로부터의 구원’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은 ‘구원’을 미래 시제로 기록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종말을 맞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우주적 종말을 맞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완성될 것을 말합니다. 이 때에는 죄의 영향력으로부터는 말할 것도 없고, ‘죄의 존재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지만 아직 죄의 유혹과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자리에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짓게 하는 악한 마귀를 대적하지만 죄와 그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우리의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하라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죄의 심층적 구조를 진지하게 고려해 보면 ‘우리의 죄 용서’를 위한 기도를 잠시라도 멈출 수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죄의 심층적 구조를 나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단번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잎과 열매’입니다. 이것은 ‘행위로 짓는 죄’에 해당합니다. 그런가 하면 나무에는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잎과 열매를 붙들고 있는 ‘가지와 줄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짓는 죄’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동기로서의 죄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죄의 본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의 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람 중심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의(義)’ 즉 이기적 본성’입니다. 물질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하나님까지도 자기를 이롭고, 의롭게 만들기 위해 수단화하고 도구화하려는 이기적 본성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의 열매에 해당하는 죄는 짓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기로서의 죄를 살피기 위해 마음을 들어다 볼 수 있다면 얼굴 들고 다닐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더욱이 죄의 뿌리인 이기적 본성의 관점으로 자신들을 돌아보면 죄로부터 자유롭다 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의 뿌리인 이기적 본성이 완전히 뿌리 뽑히는 그 순간을 맞기까지 우리는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를 악에서 구하여 주세요!

   우리를 위한 기도의 세 번째는 ‘우리로 시험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병행인 마태복음6:13절에는“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와 함께“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기도가 결부되어 있습니다.‘시험’과‘악’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말합니다.
   시험과 악은 무엇이며 어디서 옵니까? 야고보서1:13절,“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거나 악에 빠지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시험받는 것은 이어지는 야고보고1:14절 말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말씀과 같이‘자기 욕심’,‘자기 욕망과 야망’때문에 시험에 빠집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욕심에 의한 시험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아는 ‘마귀’(계12:12)의 유혹 때문에 시험에 빠집니다. 베드로전서5:8절의 경고와 같이 대적 마귀는 지금도 부지런히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 아담을 넘어뜨린 이래 마귀는 지금까지 줄기차게 사람들을 넘어뜨려 자신에게 ‘종노릇’하게 만드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사탄 마귀의 시험과 악의 실체와 무게를 결코 경시 할 수 없습니다. 사탄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눅4:1-13)할 정도로 대담합니다. 그러니 누군들 악의 시험과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사람을 고통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욕심과 욕망에서 비롯된 것에서부터, 도저히 그 실체와 규모를 가름 할 수 없는 ‘구조적인 악’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미국의 세계무역센터(WTC)테러로 인해  2,700명 이상이 무고하게 죽었습니다. 2003년3월26일 천안함이 피격 침몰되어 40명의 군인들이 죽고 6명이 실종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세월호가 침몰하여 무고한 304명이 죽었습니다. 지금 중동의 시리아에는 정부군과 반군사이의 내전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숫자를 집계할 수 없을 만큼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노벨상 평화상을 받은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 산 수지의 묵인 하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또 한명의 대통령이 감옥에 갔습니다. 슬프고도 아픈 이 나라의 현대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검찰의 공소가 사실인지, 피의자의 주장대로 정치보복일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 진실이든 둘 중 한쪽에는 교묘한 죄와 악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악의 실체와 규모가 가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세요!”라는 기도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멈출 수 없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결핍과 죄와 악’이 현실인 땅이 하나님의 ‘거룩과 다스림과 뜻’으로 완전히 뒤덮일 그 날을 소망하는 기도입니다. 이 일은 기대와 소망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또 이 기도를 하는 여러분과 저를 통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날까지 ‘주 기도’를 멈추지 않는 하나님 사람들, 주님의 제자들 됩시다!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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