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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8먼저 구할 것이 있습니다!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1:1~4
  • 설교자 : 홍순설 목사
  • 예배일자 : 2018년 3월 18일 교회소식


   지난 주일부터‘주기도문’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서‘기도의 본질’은‘기도의 길이’나‘표현의 유창함’이 아닌‘진실함’에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길이가 짧고, 형식을 갖추지 못한 투박한 표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진실한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지난 주일에 여기까지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어떻게 말씀 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예수님은 기도 할 때에 ‘우리를  위한 기도’ 이전에 ‘하나님을 위한 기도’를 먼저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기도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먼저 ‘하나님을 위한 청원 3가지’, 즉 ‘하나님 이름, 하나님 나라,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과 이어서 ‘우리를 위한 청원 3가지’, 즉 ‘우리의 양식, 우리의 죄 용서, 우리의 시험’에 대한 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에 근거해서 이런 구조의 기도를 가르치셨을까요? 또한 왜 그렇게 기도해야 될까요? 

   ‘하나님에 대한 청원’이 먼저이고, ‘우리를 위한 청원’이 나중에 오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말하듯이 ‘십계명’의 구조에 근거한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십계명의 구조와 상응합니다. ‘주기도문’의 간구 중 하나님에 대한 처음 세 개의 간구는 십계명의 첫 번째 돌 판에 새겨졌던 1계명부터 4계명까지와 일치하고, 우리들을 위한 나중의 세 개의 간구는 두 번째 돌 판에 새겨졌던 5계명부터 10번째 계명과 일치합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기도입니다.  

   왜, 하나님을 위한 기도를 먼저 해야 할까요? ‘우리를 위한 간구’를 먼저 하면 안 될까요? 안될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기도를 먼저 하게 되면 결국은 하나님을 위한 기도는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도를 하면서까지 ‘자기 욕심과 야망’의 블랙홀로 빨려들어 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조차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확장하고 강화하는 수단과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구하는 기도를 통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매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기도는 하나님을 최우선적으로 두고 우리의 욕망을 재조정하게 우리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하나님에 대한 기도를 한 가지씩 좀 더 세밀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간략하게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본성을 내포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시편145:1-2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타락해서 ‘이름 따로 존재 따로, 이름 따로 행동 따로’ 작동되는 것에 대개 크게 놀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이름에는 그 이름을 가진 존재의 정체성과 사명과 삶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 받도록 기도하라고 했는데, ‘거룩’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거룩은 하나님의 본성과 본질을 의미합니다. 일차적인 의미는 ‘구별됨’입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피조세계가 지닌 본성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하나님의 본질을 말합니다. 

   출애굽기3:14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사람을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어떤 ‘원인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원인에 상관없이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존재의 근원’이 우리와 다르신 분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출발해서 하나님은 ‘성품과 능력과 영광’이 그 어떤 피조물과도 다른 분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시편139:4절과 같이‘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신’ 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전도서5:2절,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존재와 성품과 능력, 모든 면에서 우리와 다르신 분입니다.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시29:2)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하나님에 대한 청원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본래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창세기1:26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스려짐으로 ‘보시기에 좋았던’(창1:31) 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아름다움과 조화는 깨어지고 고통과 죽음이 난무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삼상8:7). 

   급기야 하나님은 히브리서1:2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세상 나라’를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가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은 영접하지 아니’(요1:11)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세상 나라는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2:35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십자가’를 통한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승리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유일한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비밀’(골1:26~27)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본격화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 가르침, 이적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모두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람은 골로새서1:13-14절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흑암의 권세’, 즉 ‘세상 나라’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로 옮겨집니다. 

   이렇듯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하나님 나라가 ‘아직 완성’에 이르지 아니했다고 기록합니다. 언제 완성됩니까?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완성될 것을 약속합니다. 요한계시록11:15절 약속과 같이 세상 나라는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고,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 사이를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놓인 교회, 곧 성도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 번째 청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 주실 것을 바라는 기도이며, 동시에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겠다는 다짐이기도합니다. 



하나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기를!

   하나님에 대한 청원, 세 번째는 ‘하나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서에는 생략되었지만 마태복음6:10절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 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도 살폈지만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하늘’에서는 하나님 뜻에 대한 거스름이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벧전3:22절 말씀과 같이 모든 신적 존재들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의롭고 선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땅’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거스릅니다. 로마서1:19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만한 지각을 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만물’(롬1:20)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외면합니다. 이유는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사람은 ‘호모 인쿠르바투스 인세’즉‘자기를 향해 구부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뜻’,‘자기의 욕심과 욕망, 자기 야망’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이렇게 각자가 자기 뜻, 자기주장만 관철시키려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 자체가 지옥입니다. 지옥은 이렇듯 우리 각자의 ‘자기 뜻, 자기주장’이 제약 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만이 세상과 우리가 살 길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전장보다 치열한 전쟁터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안에는 자기의 이기적 본성(I-centeredness)을 따라 살려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God-centeredness)을 따라 살려는 마음과의 치열한 싸움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 아래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하는 것만이 우리와 세상이 살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향하는 탈출구를 만들어 사람들을 이 땅으로부터 구출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하늘 하나님이 친히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이유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결국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며, 주어진 자리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라는 거룩한 초대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와 그에 합당한 삶을 통해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입맞춤에 온전하게 반응하는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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